1989년 10월 6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동독을 방문했다. 에리히 호네커 동독 서기장이 그를 영접한다. 동독 건국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동베를린을 방문한 고르바초프는 "늦게 오는 사람은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며, 개혁과 변화의 불가피성을 지적했다. 또한 고르바초프는 이번 방문 기간에 호네커 동독 서기장에게 정치 민주화와 경제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설득은 소용없었다. 호네커 서기장을 비롯한 동독 지도부는 개혁을 갈망하는 국민의 열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는 점을 깨닫지 못했다. 10월 7일을 전후해 동베를린,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카를 마르크스 슈타트 등 동독의 여러 도시에서 자유선거와 여행 자유화 등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전국으로 확산된 시위 사태는 결국 10월 18일 호네커를 당서기장직에서 축출, 이듬해 말 호네커는 소련으로 망명한다.
독일의 통일에 가장 영향을 미친 것은 고르바초프에 의해 추진된 소련의 개방과 개혁정책이었다. 그 영향으로 동독이 소련의 눈치에서 벗어나 민주화를 추진하게 되었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첫 자유 선거가 실시돼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었다. 결국 1990년 10월 3일 동·서독 통일을 이루게 됐다.
▶1953년 일본, 독도에 표주건립 ▶1981년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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