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백두산 하늘길

입력 2007-10-05 11:03:52

10년 전 중국에서 한동안 체류할 때였다. 8월 초 어느 날, 벼르던 백두산 관광길에 나섰다. 오후 3시쯤 北京(북경)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탔다. 3층으로 된 침대차에서 흔들리며 가기를 꼬박 하루가 지나고도 서너 시간을 더 넘긴 오후 7시 무렵에야 延吉(연길)역에 도착했다.

이튿날 연길에서 택시를 타고 대여섯 시간 걸려 도착한 백두산 입구. 그러나 그곳엔 '長白山(장백산)'이라는 중국식 현판이 떡하니 걸려있었다. 그때의 서글픈 기분이라니! 요즘도 수많은 한국 관광객들이 순례자처럼 백두산을 찾아간다. 그 정상에서 모두들 만세를 부르며 감격에 겨워한다. 그와 동시에 찾아드는 미묘한 슬픔! 백두산과 창바이산(長白山)으로 정수리가 갈라진 민족의 靈山(영산), 남의 나라에서 백두산에 올라야 하는 현실이 우리 가슴을 친다.

백두산에 대한 중국 정부의 노골적인 야욕이 도를 더해가는 요즘이다.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으며 백두산을 관광특구로 만드느라 눈에 불을 켰다. 밀려드는 한국 관광객은 물론 내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전 세계에 '중국 관광명소 창바이산'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기 위해서다. 유네스코 등재도 서두르고 있다.

내년 8월 완공 목표로 작년 7월에 창바이산 비행장 건설 공사를 시작했다. 도로 공사와 관광 호텔 신축 등도 서두르고 있다.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속했던 백두산은 지난 5월부터 吉林省(길림성) 정부 관할이 됐다. 백두산 관광수입 극대화와 함께 백두산-한국인-조선족 동포 간의 연결고리를 끊겠다는 노림수다. 장차 백두산 소유권 등 분쟁의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노회한 속내다. 중국 어느 명승지에서도 볼 수 없는 100위안(元)이라는 고가 입장료도 억울하지만 백두산 정상, 천지 등지에서 한글 깃발이나 플래카드를 들고 사진을 찍을 수도 없게 만들었다.

이런 판에 4일 남북한 정상 간의 직항로를 통한 백두산 관광 합의는 큰 변화를 예고한다. 연 10만 명의 중국 경유 한국 관광객의 상당수가 북한 쪽으로 발길을 돌릴 전망이다. 물론 성실한 합의 사항 이행과 합리적 경비가 전제조건이지만…. 북한땅 백두산에서의 감격은 중국 창바이산의 그것과는 천양지차일 것이다. 이를 계기로 북한의 닫혀진 문들이 열리기를 기대해본다. 한몫 단단히 잡으려던 중국이 망연자실하지는 않을지 궁금하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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