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광장] 명절의 소리

입력 2007-10-02 09:54:03

설이나 추석과 같은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이 되면 도시와 농촌의 모습이 일시적으로 바뀌게 된다. 평상시에 그렇게 붐비던 도시는 적막감이 찾아온다. 명절 전 수많은 사람들이 선물과 제수용품을 구입하려고 북적대던 백화점이나 시장은 명절 때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한적함마저 감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가기 위해 기차역과 버스승강장 그리고 고속국도를 북새통으로 만들었으나 이들이 빠져나간 도시는 썰물이 밀려난 바닷가처럼 허허롭다. 반면에 노인들만 간간이 눈에 띄던 시골은 자동차와 사람들로 붐비게 된다.

늘어나는 빈집들, 아이들이 없어서 문을 닫은 시골학교, 떠나버린 젊은이들로 휑하니 비어있던 자리가 명절 때면 귀향객으로 채워진다. 넓어만 보이던 시골마을 공터는 귀향객이 타고 온 승용차들로 빈틈이 없고, 한적하기만 하던 시골 마을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이런 분위기 덕분에 명절은 시골에서 사라졌던 소리들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시기이다. 급격한 고령화와 젊은이들의 도시이주로 인해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그쳤던 농촌이 명절이 되면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담을 넘어나간다.

노인들의 거친 숨소리와 TV 소리만 맴돌던 시골집 안방에서 오랜만에 아이들의 재롱소리와 노인들의 웃음소리가 배어나온다. 도시의 팍팍한 생활 때문에 외톨이로 사느라 자주 만나지 못하던 친척들이 그래도 명절 덕분에 얼굴을 마주하고 나누는 삶의 이야기가 시골집을 채운다.

아이들이 없어서 폐교가 된 초등학교 정문엔 동창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나부끼고, 민들레 홀씨처럼 흩어졌던 친구들이 낡은 천막 아래 모여 막걸리 같은 걸쭉한 우정의 소리를 만들어낸다. 단출하던 부엌과 마당에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모여 가족과 친척들을 위해 정성으로 음식을 장만하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손님이 없어 비어있던 사랑방에선 할아버지가 손자들에게 들려주는 조상들의 이야기가 아이들의 가슴을 채워나간다. 이렇듯 사라졌던 소리가 시골마을을 가득 채우는 모습들은 눈물겹도록 정겹다. 고향에서 만들었던 소리들은 사람들의 가슴에 정을 심어주고 삶에 신바람을 일으킨다. 그래서 명절이면 사람들은 교통지옥을 마다하지 않고 고향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고향에서 명절을 보내고 나서 흥겨움의 보따리가 아니라 괴로움의 보따리를 푼다. 소위 명절증후군 때문이란다. 명절은 우리 민족의 대축제인데, 오히려 이들에겐 축제가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기야 잘 꾸며진 아파트에서 단출한 식구들 뒷바라지하던 주부들이 시설도 시원찮은 데에서 온갖 음식을 장만해야 했으니 피곤할 것이다. 직장에서 자신의 일만하던 남자들이 며칠 동안 일가친척들과 함께 지내려니 피곤할 수밖에 없다.

이런 피곤함이 명절증후군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약간의 피로가 있다고 병적인 명절증후군이 생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명절증후군의 진짜 이유는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힘든 일을 해도 기쁜 마음으로 임한다면 몸은 피곤해도 얼굴엔 행복의 미소가 피어날 것이다.

그러기에 명절 때 기쁜 마음으로 음식을 장만하고 사람들을 만난다면 약간의 피로는 느끼겠지만 명절증후군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시골집의 불편함이 싫고, 시부모와 시집 식구들이 탐탁지 않고, 일가친척을 만나 예를 지키는 것을 힘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명절증후군의 원인이 아닐까?

이 병은 약으로 치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명절이 고향 그리고 일가친척을 소중하고 존귀하게 대하는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할 때 이 병은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명절에 고향을 찾고 일가친척들이 함께 모여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성묘를 가고, 음식을 나누는 것은 힘들고 귀찮은 것이 아니라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그것은 익명화된 존재로 모래알같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뿌리를 인식하게 하고, 혈연 공동체의 구성원임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명절은 고향과 고향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일깨워준다. 그러기에 다음 명절에는 가족과 주변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 배려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시골마을을 가득 채우는 행복의 소리를 만들어 가야겠다.

김명현(신부·대구가톨릭대 사무처장)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