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일 10월 2일 '是日也放聲大哭(시일야 방성대곡)'으로 유명한 언론인 장지연이 마산 자택에서 5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평생을 언론인으로 살았으며, 만민공동회의 총무위원으로서 정부의 실정을 규탄하고 민중을 계몽하는 우국지사로 활동했다.
호는 韋庵(위암). 1864년 11월 3일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났다. 1894년(고종 31) 진사가 되고, 이듬해 을미사변 때 의병의 궐기를 호소하는 격문을 각처에 발송했고, 1897년 아관파천 때는 고종의 환궁을 요청하는 만인소를 기초하기도 했다.
'대한예전' 편찬에 참여했고, 내부주사를 거쳐 이승만·남궁 억·양흥묵 등과 만민공동회 활동을 했다. 1899년 시사총보의 주필 등을 거쳐 1901년 황성신문사 사장이 됐다.
1905년(광무 9)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11월 20일자 '황성신문'에 '시일야 방성대곡'이라는 사설을 써서 일본의 흉계를 전 국민에게 알렸다. 이로 인해 일본 관헌에 잡혀 3개월간 투옥됐다. 정부에서 통정대부로 기용하였으나 거절하기도 했다.
이후 압력이 드세자 1908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 상하이·난징 등지를 거쳐 1909년 진주에 정착 '경남일보' 주필로 취임했다. 이듬해 8월 국권이 침탈되자 황현의 절명시를 게재, 10일간 발행정지되기도 했다.
▶1869년 마하트마 간디 출생 ▶1898년 배화학당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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