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 '박근혜를 위한' 아버지의 詩

입력 2007-10-01 11:29:29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詩(시)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필자는 잘 모른다. 다 이겨 놓은 듯한 경선 문턱에서 여론조사 패배로 痛恨(통한)의 눈물을 감춘 채 웃음 띤 얼굴로 白衣從軍(백의종군)을 선언해야 했던 그녀에게 지난여름은 무척 길고 잔인했으리라. 그래서 만약 그녀가 시인이기라도 했더라면 늦여름 내내 피맺힌 詩들을 토해냈을지 모를 일이다.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께서 오늘 그런 딸의 모습을 보셨다면 어떤 위로와 충고를 해주었을까.

70년 전 우연히도 박 전 대통령은 대구사범학교 졸업을 앞둔 18세 나이 때 한편의 詩를 썼었다. 박근혜 씨가 아버지의 그때 그 詩를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시를 읽다 보면 마치 70년 후 자신의 딸이 겪을 정치적 처지와 심정을 예견하고 쓴 글이 아닌가 싶을 만큼 마음에 닿아온다. 1937년 사범학교 校友會誌(교우회지)에 쓴 '大自然(대자연)'이란 제목의 詩를 보자.

'정원 속에 핀/ 아름다운 장미꽃보다도/ 황야의 구석에 홀로 핀/ 이름 없는 한 떨기 들꽃이/ 보다 기품 높고 아름다우리니/

아름답게 꾸민 귀부인보다도,/ 명예의 노예가 된 영웅보다도/ 태양을 등지고 대지를 가꾸는 농부가/ 보다 기품 높고 아름다우리니/

하루를 살더라도 저 태양과 같이/ 하룻밤을 살더라도 저 파도와 같이/ 여유 있게, 느긋하게/ 가는 날을 보내고 오는 날을 맞고 싶다.'

어쩌면 지금 박근혜 씨는 화려한 정치권 속에 꽃핀 장미라기보다 황야의 구석에 홀로 핀 이름 없는 들꽃 처지가 돼있다. 그러나 그게 보다 더 기품 높고 아름다우리라고 아버지의 시는 위로하듯 일깨운다. 시는 또 대권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대선후보라는 영웅보다 大地(대지=민심)를 가꾸는 백의종군의 농부 처지를 더 기품 있고 아름답다고 격려한다. 백의종군을 선언한 딸의 기백을 칭찬해주는 듯한 詩句(시구)다.

하루를 살더라도 태양처럼 파도처럼 여유 있고 느긋하게 살며 '오는 날'을 맞으라고도 했다. 딸 박근혜에게는 이번 대선 정국은 '가버린 날'이다. 次期(차기)의 '오는 날'을 맞으려면 파도처럼 여유롭게 느긋하게 살아라고 가르치는 것일까.

가을밤 창가에 앉아 되뇌고 또 되뇌어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아버지의 詩'다. 이유는 따로 없다. 백의종군、 말 그대로 권력, 조직, 세력 그 어떤 것도 지니지 않고 약속된 공동의 정의로운 가치를 위해 온몸을 던져 헌신하는 것이다.

경선 끝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조직을 짜고 '포럼' 따위의 지지 세력을 모으는 무리에 둘러싸여 화려한 붉은 옷을 입으려 한다는 초조함을 의심받는다면 진정한 백의종군이 못 된다. 이긴 쪽에서 감싸고 눈물 닦아줘야 한다는 위로와 동정엔 귀기울이지 말라. 그보다는 오라고 안 해도 먼저 찾아가 설거지라도 도와줄 일 없느냐고 소매 걷고 나서는 것이 더 커보이는 백의종군의 모습임을 생각하라. 敗將(패장)에겐 전리품이 없다는 빈 마음으로 돌아가 파도처럼 여유로워야 한다.

경선이 끝난 순간 투쟁의 목표는 이명박 사단이 아닌 '정권 교체'로 바뀌었다. 新黨(신당)은 전열을 가다듬어 밀려오고 있다. 당권보다 대권을 바라보며 함께 총을 들어야할 때인 것이다. 아버지의 詩는 더 이상 분열의 불신을 주는 지지 모임에 끌려 들어가 물건너간 영웅의 꿈, 명예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 가르친다. 차라리 황야의 구석에서 홀로 핀 들꽃의 기품을 지키라 한다. 대지를 가꾸는 흰옷 입은 농부의 심정으로 오늘부터라도 이명박의 손을 잡고 시장바닥, 길거리를 누비며 정권 교체를 외치라. 그것이 아버지가 남기신 詩처럼 영광된 '오는 날'을 맞을 수 있는 길이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