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계절 가을에 문득 떠오르는 단상이 있다. 우선 출판동네에 한마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책을 내려고 하면, 어느 출판사 사람들이나 대개 내뱉는 말이 "아! 얼마나 팔릴까요?"가 첫 인사다. 어려운 여건에 판매량 걱정부터 하는 고민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그렇게 해서는 출판계는 '결국은 죽는다'.
어떤 필자에게도 판매량은 진폭이 없을 수 없다. 나 자신도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가 50여만 권에 다가섰다면 , 1991년에 펴낸 학술서 '북한민속학사'는 지난 15년간 초판도 재고가 남아있다. 그러나 50만 권짜리 책이 초판 넘긴 책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인문학 저술을 일생의 업으로 삼고 학문에 정진하는 본인으로서는 두 책 모두 필요한 과정이요,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별 저술이다.
어느 출판인이 참으로 한심한 말을 내게 던졌다. "그 프랑스 인류학자의 책은 찍을 때마다 많이 팔렸다면서요?" 천만에 말씀. 번역 소개되는 어떤 외국인 학자들의 책도 대표작 중에서도 '잘 나가던' 책들 중심으로 소개되곤 한다.
가령, 프랑스 구조주의인류학의 대가인 레비스트로스의 저작들 중에서 '슬픈 열대' 같은 책들은 번역 소개되고 많은 양이 팔려 나갔지만, 정작 그가 찍은 장중한 흑백사진집은 번역되지 않았다. 브로델의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은 요행히 번역자를 만났지만, 정작 그의 필생의 업적 중의 하나인 '펠리세 2세와 지중해문명사'는 번역되지 않았다.
어떤 외국인 학자의 저술 목록에도 이러저러한 학문적 편력과 단계가 있는 법. 양질의 필자를 출간으로 지원하고, 장기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진정한 출판인을 언제쯤 만날 수 있으려나. 다음에는 독자들에게 한마디!
우리 독자들은 '뷔페음식'을 즐기는 것 같다. 한 권에 이러저러한 내용들이 적당한 수준과 양으로 담겨 적은 비용으로 독서효율을 올릴 수 있는 책들에 눈길을 준다. 전작물이나 양질의 총서보다는 그저 한권으로 간단히 '때우길' 희망한다. 한국의 독자들이 오늘날까지 보여주고 있는 '천박한 뷔페잔치'선호도에 애도를 표할 수밖에 없다. 뷔페음식에 중독된 독자들은 정작 단종 메뉴의 정갈한 음식이 차려져 나오면 무덤덤하다.
독자들이여! 뷔페음식을 그만 드시고 품격있는 '마이크로 접근'으로 입맛을 바꿈이 어떠하리오. 뷔페에만 중독되면 입맛은 다채로워지겠지만 정작 깊고도 진득한 입맛은 놓치는 법이고, 인문학의 진수는 결코 꽃피지 않을 것이다.
필자들에게도 한마디 하고 싶다. 아직도 책은 책다워야 하고, 책은 시대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고전적' 입장에서 벗어나질 못한 나 같은 인문학자로서는 할 말이 많다. 학자들의 표절과 의사모방 같은 학술적 파렴치 행위, 무임승차 행위 등이 도를 더해간다.
어느 학자는 외국의 책을 버젓이 번안하여 그대로 책을 펴낸다. 그 책이 문화관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되기도 한다. 이래서야 책이 팔리지 않는 것을 오로지 독자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독자들이 그러한 엉터리 책을 모를 정도로 어수룩할까.
책 읽지 않는 독자를 탓하기 이전에 독자들의 독서경향을 잘못 오도하고 있는 출판계와 필자들부터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인문학의 위기를 탓하면서도, 정작 인문학의 외길을 걷는 출판사가 거의 드문 현실을 누구의 탓으로 돌릴 것인가.
인문학을 죽이는 출판풍토를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인문학 기반 없이 일국의 출판문화가 일어설 수 있다는 망상을 아직도 다수의 출판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언제쯤 '수입학'이 아니라 우리의 인문학을 의연하게 보듬어 주고 일생을 필자들과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출판사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차제에 지방사 및 지방문화 책자출간에 관하여 사족을 붙여본다. 일본 규슈에 가면 규슈 나름의 독자적인 책들이 서점의 구석이나마 채우고 있다. 중국 광저우 서점에 가면 광동의 역사와 문화를 다룬 책들이 손님을 기다린다. 미국 애리조나주의 명상도시 세도나에 갔더니 인디안문화 책자들이 즐비하니 매대에 올라있다. 우리의 부산이나 대구는 어떤가? 지방의 대학이나 지자체는 자기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책자발간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을까.
혹시나 중앙 위주의 출판을 비판하면서 정작 자신들도 중앙에 중독되어 오로지 중앙에서만 출간하는 것을 지고의 업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참고로, 필자는 근 10여 년 연구한 해양문화에 관한 방대한 책자를, 동아시아 바다의 중심인 제주도에서 출간하기로 결정하고 현재 조판에 들어갔다.
주강현(한국민속문화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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