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은 살아있다.'
'박물관은 살아있다'는 영화처럼 박물관뿐만 아니라 도서관도 진화하고 있다. 읽고 싶은 도서를 대출하고 열람실에서 공부하는 것은 기본. 이제 도서관에서 영화를 볼 수도 있고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 등의 외국어강좌를 수강할 수도 있다. 서예와 산수화, 붓글씨 등은 물론이고 닥종이공예와 소자본창업교실 등 강좌내용도 다채롭다. 보고 싶은 책을 신청하면 곧바로 구입, 책이 도착했다며 신청자에게 알려주기도 하고 장애인들에게는 배달까지 해주기도 한다. 초·중학교에 다니는 자녀들과 함께 도서관에 간다면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다. 영·유아들과 함께하는 '북스타트 운동'에도 참여할 수 있다.
소장도서가 많은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만 도서관이 아니다. 집 주변에 자리 잡은 공공도서관을 찾아도 충분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대구에는 중앙도서관뿐만 아니라 동부, 남부, 서부, 효목, 북부, 두류, 대봉, 달성도서관 등 공공도서관이 9곳이나 된다. 각종 강좌와 문화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다. 독자와 함께하는 문학기행, 독후감 및 글짓기대회는 단골행사. 서부도서관은 4만 2천195쪽을 읽는 '독서마라톤대회'를 진행하기도 한다.
▶"손녀와 도서관 찾는 재미에 푹"
손녀의 고사리손을 잡고 효목도서관을 찾은 박명자(64·여·대구시 수성구 만촌동) 씨. 손녀 혜정(8·동원초 1년)이가 좋아하는 동화책코너를 찾아 신간을 골랐다. 혜정이는 한 번 본 책은 아무리 재미있어도 다시 읽지 않는다. 항상 새로운 책을 찾는다. 여름방학 때는 이틀에 한 번씩 도서관을 찾았다.
박 씨는 "혜정이가 책을 너무 좋아해 처음엔 운동삼아 도서관에 같이 다녔다."며 "아이도 책을 접하니까 글자도 더 빨리 깨우칠 수 있었고 이제는 책을 읽어주지 않아도 혼자서도 잘 읽는다."고 했다.
이처럼 도서관에는 손자, 손녀와 함께 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꽤 있다. 맞벌이부부를 대신해 아이를 돌보는 부모들이 늘어난 탓이다. 부모와 함께 오는 유아들을 위해 각 공공도서관에서는 '모자방'을 설치,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동화를 읽어주기도 한다.
▶"강의 듣고 봉사활동까지"
김용화(40·주부) 씨는 거의 일주일내내 도서관에서 산다. '이야기를 통한 독서교육'(수요일 오전 10~12시)'과 '삶의 그림으로서의 글쓰기'(화·목요일 오후 7시), '사서와 함께 책으로 마음열기'(격주 수요일) 등의 강좌를 수강한다. 수강료는 없다.
"도서관에 가면 편안해져요. 강좌를 듣고 얻어가는 지식도 좋지만 함께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로부터 얻는 것이 더 많아요." 대부분의 강좌가 3, 4개월씩 이어지기 때문에 수강생들끼리 친해질 수밖에 없다. 1998년 대전에서 대구로 이사를 온 그녀는 외지인 대구에서 지내기 '심심해서' 도서관에 나오기 시작했다. 요즘은 강좌를 함께 듣고 난 수강생들끼리 도서관에서 자원봉사 모임을 만들어 '북스타트 활동' 등 각종 자원봉사에도 열심이다. "도서관에서 얻은 만큼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나눠 줘야 되는 것 아닌가요?" 그녀가 하는 '책고리'모임은 도서관을 찾는 어린이들에게 할머니들이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전래동화와 이솝우화 등을 들려주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열람실은 공부방으로도 그만"
물론 집으로 돌아갈 때는 언제나 몇 권씩 책을 대출한다. 대출자격은 대구시민이면 누구나 가능하다. 1회에 5권씩 10일간 대출할 수 있으며 1회에 한해 연장할 수도 있다. 책값이 비싸다면 서슴없이 도서관에 비치된 엽서에 도서구입 요청을 하면 일주일 안에 요청한 도서가 도착했다는 메일을 받을 수도 있다.
도서관열람실은 공부방 역할까지 톡톡히 하고 있다. 요즘 공공도서관 열람실에서는 취업준비에 여념이 없는 수험생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김혜수(27·여·대구시 동구 효목동) 씨는 "집도 가깝고 생각보다 분위기도 괜찮다."면서 "공부를 하다가 가끔 머리를 식히기 위해 잡지도 보고 책을 빌려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 추석연휴 기간 동안에도 공공도서관 열람실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연휴 직후의 중간고사 시험 준비를 하는 중·고생들이 많이 찾아서다. 대부분의 공공도서관은 오후 10시까지(효목도서관은 오후 11시까지) 문을 열기 때문에 요즘에는 중·고생들도 많이 찾는 편이다.
글·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사진·정우용기자 vin@msnet.co.kr
♠ 할머니+손자·손녀 '도서관 최다 커플'
"대통령이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책읽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대구 효목도서관 권계순(52·여) 관장은 사서출신이다. 지금도 도서관에서 개설한 아름다운 관계를 위한 독서치료 등 각종 독서관련 강좌에 강사로 나서고 있다.
권 관장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도서관을 많이 찾고있고 특히 손자, 손녀와 함께 오는 모습은 요즘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도서관풍경"이라고 말했다. "도서관이 달라진만큼 이용하는 시민들도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덧붙였다. "책을 읽는 문화인이라면 도서관에서 만큼은 공동체의식을 갖고 공공재산인 책과 도서관을 이용해주는 지혜를 발휘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권 관장은 "가을에는 여행을 떠날 때도 반드시 책 한 권정도는 가져 가자."며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IT강국이라며 인터넷만 하는 모습만 언론에 노출하지 말고 청소년들이 책읽는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책읽는 모습을 의식적으로라도 자주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지천명(50)을 넘긴 나이지만 그녀는 '문학예술' 가을호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한 새내기 시인이다. "20, 30대 때는 남들처럼 명예욕이 넘쳐났지만 도서관에 지낸 오랜 생활이 뒤늦게 시를 쓰도록 만들었나 봅니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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