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허시명의 주당천리

입력 2007-09-29 07:57:26

허시명의 주당천리/ 허시명 지음/ 예담 펴냄

지은이는 "고려 개국 1등 공신 4명, 2등 공신 100여 명 등 3천20여 명에 이르는 개국공신 명단에 새로운 이름이 추가돼야 한다."고 강변한다. '안중(安中)'이라는 이름이다. "고려 창업에 결정적인 수훈을 세웠다."는 그의 이름이 빠진 것은 그 신분이 미천했기 때문일 거라는 얘기를 들은 것을 널어놓는다. 이런 이야기가 전설이나 설화 연구를 하다가 찾아낸 것이 아니라는데 이 책의 묘미가 있다.

지은이 허시명 씨는 여행가이면서 동시에 술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인물이다. 최근에는 국세청이 주최한 제1회 대한민국 주류품평회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우리 술 전문 여행작가'라는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 있다. 이미 강원도 산골부터 땅끝마을까지 23가지 이름난 우리 전통술을 빚는 사람들과 마을을 발벗고 뛰어다녀 만든 기행집 '풍경이 있는 우리 술 기행'(2001), 5년 남짓 전국 100여 군데 양조장을 발품을 팔며 발견해낸 뒤에 밀려나 잊히는 우리의 술 이야기를 담은 '비주, 숨겨진 우리 술을 찾아서'(2004)를 펴낸 허 씨가 "세 번째로 펴내는 술 관련 책"이다.

"술은 나와 함께 여행하는 자동차"라는 허 씨는 "나는 술에 실려 세상을 떠돈다. 술이 흘러가는 곳에 길이 있다. 그 길을 따라가며 낯선 사람도 사귀고, 낯선 세상도 겁없이 경험한다."고 말한다. "술을 찾아 천 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천 년을 멀다 하지 않고 떠돌아다녔다."는 허 씨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주당들이라면, 아니 술 한 모금 입에 못 대는 사람들에게도 쏠쏠한 재미를 전해 준다. 단순한 술 얘기가 아니라면 전국 방방곡곡의 술을 찾아 돌아다니며 찾아낸, 그 안에 녹아 있는 또는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풀어내기 때문이다.

고급 한정식집에서 자주 찾는 화랑이 국가의 정책에 따라 부활한 경주법주가 다른 민속주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시도였다는 이야기가 소개된다. 그 제조 공정은 더욱 흥미를 끈다. 허 씨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전통 약주 제조기간이 보통 30일 정도인데 비해 화랑 제조에는 무려 150일이나 걸리고, 그 사이에 클래식 음악까지 이용한다. 제주의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의 고영자 씨가 빚는 '오합주'에는 달걀과 참기름이 들어가 보양음료 노릇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포도주 역사가 고려 충렬왕 28년(1302), 34년(1308)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것, 조선 효종 4년(1653) 하멜이 탄 배가 난파하면서 밀려온 '클래릿' 포도주, 이후 조선 후기의 포도주 제조 기록 등 다양하다는 면도 귀를 솔깃하게 한다. '술 유랑기'를 풀어내기 위해 동원한 각종 역사 지식과 일화도 마찬가지이다. 대구·경북 곳곳에 은둔(?) 중인 명주를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책 여러 곳에서 금복주가 언급되고 있는 점도 눈을 한 번 더 가게 한다. 웬만한 주당이 아니고서는 쉽게 알 수 없는 이야기이기에 더욱 그렇다.

음주가 생활의 일부인 한국에서, 누가 더 많이 마시나 내기하고 술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주당들은 지은이가 천 리를 돌고 얻은 '주당천리 10계명'을 마음에 새겨둘 만하다. '주당 철학 - 주는 대로 마시지 말고 골라 마시자' '주신을 섬겨라.' '약주로 효도하라.' '한국 와인의 족보를 찾아라.' '감미료 술을 마시지 말라.' '숙취를 무릅쓰고 기발한 술을 찾아라.' '한국 소주를 세계 명주로!' '100일 동안 숙성시킨 백일주를 마셔라.' '자기만의 주안상을 차려라.' '술이 떡이 되지 말고, 술이 덕이 되게 하라.'

술을 마시는 연륜, 술을 마신 친구, 술 마신 기회, 술을 마신 동기, 술버릇 등에 따라 단(段)을 메긴 조지훈 선생의 '주도 18단'까지 참고로 한다면 '주신(酒神)'은 아니더라도 '주선(酒仙)' 내지 '주성(酒聖)' 정도는 될 수 있을 듯하다. 336쪽. 1만 4천 원.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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