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남북정상회담 논의 구조의 문제점

입력 2007-09-27 08:45:26

소모적 논쟁에 묻힌 회담…'왜' 보다 '무엇을' 논하자

며칠 후면 2000년 정상회담 이후 7년 만에 남북의 최고지도자들이 만난다. 두 번째 만남인 까닭에 처음 만남만큼의 설렘은 없다고 하더라도, 남북한 모두에 그리고 더 나아가 한반도의 안정에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회담이라고 할 수 있다.

2차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2·13합의 이후 해결의 가닥을 잡고 있는 북한 핵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전쟁의 공포로 얼룩 지워진 지난 반세기의 분단구조가 종식되어 평화체제로의 전환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을 가장 반기고 지원해야 할 남한 내 분위기는 지나치게 가라앉아 있는 듯하다. 심지어는 정상회담 개최를 반대하는 여론마저 적지 않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국가의 정책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가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상회담 개최를 무조건 지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그동안의 북한문제와 관련된 우리 사회의 논의 구조의 비정상적인 경향이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여전하다는 것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흔히 '남남갈등'으로 표현되는 북한관련 논의 구조는 대북정책 자체의 문제에 대한 논란이 아니라 북한문제를 국내정치로 환원시키는 문제를 갖고 있다. 좀 쉽게 말하자면 김대중 정부의 포용정책이나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의 문제는 정책 자체에 있기보다는 김대중과 노무현이 하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다. 즉 노무현과 김대중에 대한 공격의 일환으로 대북정책을 이용해 왔다는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의 통일정책은 노태우 정부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정립된 이래로 근본 철학이나 이념이 바뀐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골간은 전쟁이 아닌 화해와 협력을 통해서, 그리고 점진적으로 통일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2·13합의 이후 한나라당 일각에서 포용정책의 원류는 자신들에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들이 만들었던 정책을 그동안 스스로 비판했다는 논리적 모순을 고백하는 말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한나라당의 새로운 대북정책이나, 이명박 후보의 대북정책이 그동안의 포용정책이나 평화번영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밖에 없는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어쨌든 지금까지 치열하게(?) 전개된 남남갈등은 내적으로 정쟁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남남갈등이란 말 자체가 특정 언론사가 만든 조어로 정부의 무능과 사회적 혼란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담론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왜곡된 논의 구조가 국가와 민족이 필요한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데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정상회담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는가 하는 식의 건설적인 논의가 아니라, 회담 개최의 당위성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 회담의 정치적 효과에 대한 정쟁적인 논란들이 팽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2차 정상회담 발표 때부터 논란이 중심이었던 대통령 선거와의 연관성도 과거의 경험을 생각한다면 설득력이 없는 문제이다. 이미 2000년 정상회담 발표에도 집권당 득표에 도움이 안 되었던 경험이 있다. 오히려 KAL폭파 사건과 같은 남북관계에서 부정적인 사건들은 선거에 영향을 주지만, 대북지원이나 교류확대와 같은 긍정적 사안들은 선거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은 검증된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과 같이 중요한 사안에 대한 논의구조가 문제가 있는 것은 일파적으로 '보수기득권'세력의 정치적이고 정쟁적인 목적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만의 책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1차 정상회담의 경우에도 그렇지만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집권세력이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한 설득이나 배려가 거의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필요하고 정당한 정책이라고 하더라도 다양한 의견의 수렴이 필요하다. 또한 자신의 정책이 중요하기 때문에 정치적인 반대세력을 무시한다는 것은 교조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추진하는 정책 자체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결과적으로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우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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