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를 찾아서] 불교성지⑮-경주 불국사

입력 2007-09-27 07:17:47

불국정토의 정신 완벽히 구현한 '천상의 절'

우리나라 사람치고 경주 불국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다못해 초등학교 수학여행에서부터, 경주 나들이 길에 들른 사람까지 모두 다 '불국사 잘 알지요' 표다. 일년에도 수십만 명이 불국사를 다녀가지만 정작 이곳에 스며있는 불국정토의 정신을 온전히 느끼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불법의 궁전, 토함산 서록에 인류의 빛으로 떠있는 불국사의 참 정신을 알고 있다면 참배객, 관람객 모두 달라질 것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불국사 일주문을 들어선 들, 불국사 경내가 그렇게 소란스러운 북새통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수학여행' 차원의 불국사 관람하기는 넘어서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 서라벌 고토를 부처님 향기로 물들이고, 한국이 고유한 정신문화를 지닌 역사적인 땅임을 세계속에 드러낼 경주 불국사에 가면 묵언을 실천해보면 어떨까. 돗대기 시장판 같아서는 알맹이를 볼 수가 없다. 침묵해야 보인다. 조용한 순례, 마음과 마음으로 느끼는 불국사는 새롭게, 또 더 깊숙이 다가올 것이다.

◈불국사에 세 부처님이 계시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주 불국사는 천 수백 년의 풍상과 천재지변의 격동 속에 시달리면서도, 그 모습을 지켜온 석축과 청운교 백운교 칠보교 연화교에 의해 속세와 분리된 천계(天界)로 구성되어 있다. 일주문으로 들어서든, 천왕문으로 들어서든 불국사를 보는 가장 무난한 코스는 대웅전-무설전-관음전-비로전-나한전-극락전-불교미술관으로 통하는 동선이다. 이렇게 불국사를 돌아보면 무난하게 어느 한 곳도 빠뜨리지 않고 불국사의 정신에 빠질 수 있다. 과거처럼 청운교 백운교 33계단을 올라 자하문(불이문)을 지나 대웅전으로 가는 코스와, 칠보교 연화교를 올라 안양문을 지나 극락전으로 가기는 불가능하다. 청운교 백운교 칠보교 연화교 4교(橋) 전부 통행금지 조치가 취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국사의 경내 배치도를 미리 알고 가는 것은 필수이다. 알지 못하면 불국사를 보지 못한다. 봐도 본 것이 아니다. 가도 간 것이 아니다. 그냥 피상적인 구경에 불과한 불국사 관람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불국사에는 대웅전, 극락전, 비로전을 중심으로 세 부처님이 계신다. 불국사의 가장 중심인 대웅전에는 현세불인 석가모니불이, 극락전에는 극락왕생 이후의 세계를 주관하는 아미타여래불이, 비로전에는 지혜의 법신 그 자체인 비로자나불이 계신다.

◈다보탑 석가탑을 품은 불국사 대웅전

불교를 믿는 이들의 스승인 석가모니불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으로 가득 찬 사바세계를 불국정토로 바꾸려고 한평생 설법하고, 교화하며, 중생과 더불어 살다 가신 부처님이다. 대웅전 석가모니불은 속되고, 잡된 것으로 가득 찬 이 세상 중생들의 마음을 평온과 행복이 깃든 참 생명과 해탈로 이끄는 법문을 끊임없이 무언중에 설파하고 있다. 소리를 죽이고, 가만히 귀 기울여 마음을 열어야 들리는 무언의 설법(說法)이다. 다보탑 석가탑을 앞에 두고 있는 대웅전을 뒤편 무설전을 지나 산쪽으로 더 오르면 관음전(부처님이 아니라 관세음보살을 모신 곳)과 그 옆 비로전이 나온다. 비로전은 빛이다. 화려한 빛이 아니라, 크나큰 고요와 진리가 깃든 빛의 세계,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연꽃으로 장엄된 맑은 연화장(蓮華藏) 세계를 관장하는 비로자나불이 관람객들의 손을 반갑게 잡아준다. 불국사 비로전 금동비로자나불은 국보 제26호이다. 비로자나불은 때와 장소, 사람에 따라 가변성을 띠며, 그 모습을 나타낸다. 누구든지 진심으로 기도하고, 간절히 희구하면 알맞게 나투어 자비를 베푼다. 이러한 비로자나불과 일치를 이루는 길은 딱 한 가지 보살행뿐이다. 그것을 깨달으면, 불국사를 찾은 보람이 있다.

◈내가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임을 느껴야

비로전에서 나와서 나한전을 거쳐 돌계단을 내려오면 극락전이다. 고해의 파도를 타고 출렁거릴 수밖에 없는 중생이라면 누구나 절대적 행복으로 충만되어 있는 극락정토를 원한다. '극락'이란 범어로 즐거움이 있는 곳이라는 뜻을 지녔고, 한자로는 안양(安養)이 된다. 그래서 불국사 마당에서 연화교 칠보교를 올라서 극락전으로 통하는 문이 안양문이다. 지옥 아귀 축생 등 삼악도(三惡道)의 불행이 없는 극락정토에 드는 길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시인 구상이 노래했듯이 더러움 속에서도, 괴로움 속에서도 항상 스스로의 마음을 밝히고, 지금 내가 앉아있는 자리가 꽃자리임을 알고 열심히 공덕을 쌓으면 그곳이 바로 극락정토이다. 대웅전에서 무설전을 통해 비로전으로 가지 않고, 좌측 아래로 난 3열 48계단을 내려와도 극락전으로 이어진다. 극락전과 대웅전을 이어주는 돌계단이 48개인 것은 극락전에 모신 아미타불의 수행과 깊은 연관을 지닌다. 아미타불이 과거에 수행자로 있을 때, 48대원을 일으켜 그것을 하나하나 성취하여 부처의 자리에 올랐음을 평범한 돌계단에 심어놓은 것이다. 이를 안다면 어떻게 우당탕탕 계단을 내려갈 수 있을까?

최근에는 극락전에 황금돼지가 새겨진 것이 발견되어 또 한 차례 관심을 모으기도 하였다. 이 세 부처님을 모신 법당으로 인도하는 문이 바로 자하문(불이문) 안양문이다. 청운교, 백운교(국보 제23호)를 올라서서 자하문에 들어서면 대웅전이, 칠보교 연화교(국보 제22호)를 올라가서 안양문에 들어서면 극락전이 나온다. 앞서도 썼듯이 이 4다리는 출입금지되어 있어, 동쪽 회랑으로 난 옆문으로 들어가면 대웅전과 다보탑 석가탑이 바로 나온다.

◈원래 연못이던 불국사 앞마당

원래 청운교 백운교, 칠보교 연화교가 놓여있는 불국사 석단 앞마당은 연못이었다. 지난 1969년 불국사 발굴에서 타원형 연못터가 발굴되었다. 지금도 자하문에서 석단쪽을 내려다보면 물을 받아내는 수출구(水出口)가 툭 튀어나와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수출구는 대웅전 동회랑 북쪽에서 설치한 지하 배수구를 통하여 대웅전 밑으로 흘러내린 물이 떨어지는 곳이다. 요즘도 비오는 날 불국사에 가보면 이 수출구에서 물이 콸콸 쏟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수출구에서 떨어지는 물이 포말처럼 부서지면서 물안개를 일으키고, 그속에서 무지개가 뜨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대웅전 앞 석가탑쪽 회랑 끝에 있는 누각의 현판이 왜 뜰 범(泛)자, 그림자 영(影)자를 쓴 범영루(泛影樓)인 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청운교 백운교, 칠보교 연화교 아래 불국사 마당이 거대한 연못이었고, 비오는 날 범영루 앞 석단이 물보라에 가려져서 시계가 흐려지면 불국사는 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하늘에 떠있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지어졌다. 더 이상 완벽하게 불국정토를 나타낼 수 없는 불국사의 장엄한 법당과 당우들이 물속에 그림자처럼 고요히 드리웠다고 해서 지어진 종각의 이름이 바로 범영루이다. 요즘 사람들은 왜 이 누각이 그림자가 떠있는 범영루인지 알 길이 없다.

◈불국사와 사(四) 왕녀

한번 상상해보자. 불국사 마당자리에 들어섰던 연못에 그림자를 드리운 자하문 안양문 범영루와 함께, 거울 위에 물건을 놓아보면 더 커보이는 '거울 효과'를 생각해보라! 불국사 석단 수출구에서 떨어지는 폭포수가 안개를 일으키고, 거기서 무지개가 뜨면 불국사는 지상 절이 아니라 천상 절의 모습이 되지 않겠는가? 세계 어느 문화유산도 따라오지 못할 신비를 품고 있는 곳이 바로 불국사이다. 불국사는 흰피를 꽃비처럼 하늘로 솟구치며 순교한 이차돈의 순교 이후 불교를 공인한 이듬해(528년, 법흥왕 15년)에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 부인과 왕비의 발원으로 창건되었다. 법흥왕의 어머니와 법흥왕의 아내는 세상 인연과 영화를 훌훌 털어버리고,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어 불국사에서 수도하였다. 진흥왕은 불국사를 중창하였고, 어머니 지소 부인의 극락왕생을 빌며 지금의 금동 비로자나불과 아미타불을 조성하였다. 진흥왕의 아내도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다. 비로전과 극락전을 찾으면 이들의 출가와 진흥왕의 효심도 한번 떠올려보면 어떨까? 문무왕은 대웅전 뒤 무설전을 건립, 무설전에 의상대사와 그 제자 표훈 율사 등을 초빙하여 화엄경을 강론하게 하였다. 불국사가 최대의 모습으로 개수된 것은 경덕왕(35대) 때다. 이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잘 보존되어 왔으나 임진왜란으로 큰 참화를 당하였다.

◈임란 때 왜병들이 불국사 소실시켜

임진왜란 때 왜병들은 불국사의 보물을 찾느라 절 곳곳을 샅샅이 뒤지다가 지장전 벽속에 숨겨둔 무기를 보고 말았다. "아름다운 꽃 속에 독벌레가 숨어있는 법"이라면서 승려 8명을 무참히 살해하고, 불을 질러버렸다. 2천 년 웅대한 가람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해버리는 순간이었다. 약간의 귀중품과 석조물만 남아 있던 불국사는 500여 년에 걸친 대복원 공사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청운교 백운교는 옆으로 두 개가 아니라 아래위로 두 개가 나눠진다. 청운교(아랫단 17계단) 백운교(위쪽 16계단)는 각각 33계단으로, 도리천인 33천을 나타낸다. 한 계단, 한 계단 연꽃이 활짝 피우며 올라가는 향기로운 걸음을 언제 걸을 수 있을까? 부처의 경지로 올라가는 이 청운교 백운교는 무지개처럼 희망의 다리이자 축복의 다리이다. 청운교 백운교를 올라가서 만나게 되는 다보탑(국보 제20호)이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나온 석가탑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너무 잘 알려져서 예사로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일본인 중에는 다보탑 신봉자들이 적지 않다. 다보탑이 정신적 영험을 믿는 다보탑 신봉자들은 저마다 경주산 다보탑 축소형을 집집마다 신주처럼 모시고 있으며, 다보탑 탑돌이를 하며 법화경을 외다 보니 갑자기 부처님이 나타나 계시를 주었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글·최미화기자 magohalmi@msnet.co.kr 사진·정우용기자 v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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