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골목
강현덕
허옇게 배를 뒤집고 쥐 한 마리 죽어 있었다
동네 누렁이 오줌으로 돌담은 늘 젖었고
한 켠엔 개망초꽃이 멋모르고 피곤 했다
검은 굴뚝 위로 초저녁 별 뜰 때면
바람은 한 차례 은빛 연기를 몰고 갔다
개망초 철없는 꽃잎도 휩쓸렸다가 돌아왔다
장사 마친 아버지는 그 무렵 들어섰다
참외 한 봉지가 리어카에서 흔들렸고
어린 난 귀 기울이다 서둘러 외등을 켰다
누구에겐들 마른 꽃과 같은, 어린 날의 몇 묶음 추억이 없으랴. 그 마른 꽃과 같은 추억 속의 현장을 그려낸 작품입니다. 각인된 몇 장의 삽화에는 귀꿈스러울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리 넉넉지 못한 한 가계의 모습이 오롯합니다.
허옇게 배를 뒤집고 죽은 쥐, 누렁이 오줌으로 젖은 돌담, 검은 굴뚝과 은빛 연기, 그 언저리 무리 져 핀 개망초꽃 - 골목 안은 이처럼 기억 속에 흔히 있음직한 심상들로 가득한데요. 그 가득함이 외려 결핍의 정서를 강하게 자극합니다.
기우뚱한 서사의 풍경 한 켠에 소녀가 서 있습니다. 장사 마친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아니 아버지가 리어카에 매달고 올 참외 한 봉지를 기다리는. 다 저문 날의 골목 어귀, 서둘러 켜는 외등. 불현듯 환해지는 마음의 굴뚝 위로 초저녁 별이 뜹니다. 아버지가, 아버지의 리어카가 돌아온 것입니다.
박기섭(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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