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양심적 병역거부

입력 2007-09-26 10:25:46

反戰(반전)주의자가 아니라도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류역사는 그 반대의 궤적을 그려왔다. 한 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기원전 1500년부터 기원후 1860년까지 약 8천건의 평화조약이 체결됐는데 지속기간은 평균 3년이 못됐다. 1945년부터 1990년사이 전쟁이 없었던 기간은 3주에 불과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래서 인류역사는 '전쟁을 끝내기 위한 '단 한번의 전쟁'이 연속되어온 전쟁의 역사'로 규정되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은 많은 평화주의자들을 좌절시켰다. 아인슈타인도 그 중 하나다. 그는 개인적인 저항(양심적 병역거부)으로 유럽에서의 군국주의와 싸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나치 독일의 위협에 떨고 있는 벨기에와 프랑스의 현실 앞에서 그는 신념을 꺾었다. 히틀러에 쫓겨 미국으로 망명한 뒤 한 知人(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의 상황에서 내가 벨기에 시민이라면 병역을 거부하지 않겠다. 유럽문명의 보호에 기여한다는 생각으로 기꺼이 군복무를 받아들이겠다."

러시아 혁명후 赤軍(적군) 총사령관이었던 트로츠키가 "당신은 전쟁에 관심이 없을지도 몰라도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고 했다던가. 이렇듯 전쟁은 내가 거부한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295년 로마군에 의해 처형된 북아프리카인 막시밀리아누스, "베트남 사람들은 나에게 조금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 내가 그들과 싸울 이유가 없다."며 징집을 거부한 무하마드 알리, 그리고 그들의 수많은 동지들은 자기 양심을 지켰을지는 몰라도 전쟁을 막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자기 양심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들의 양심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들 대신 전쟁에 나선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필요로 하니까.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도입을 주장하는 '대체복무'도 마찬가지다. 군복을 입고 총을 잡는 것은-현실적이든 잠재적이든-전쟁에 나가 죽을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나 대체복무는 차원이 다르다. 그것이 아무리 힘들어도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는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 반대론자들의 지적이다.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과 대체복무 도입을 골자로 한 정부의 병무제도 변경안을 놓고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여론은 누구편일까.

정경훈 정치부 부장대우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