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군·백군은 옛 추억…성화 봉송·엄마와 난타 등 아이디어 만발
중장년 세대가 간직한 초등학교 추억 가운데 하나가 '가을 운동회'다. 파란 하늘에 휘날리는 만국기, 공책 한 권이라도 더 타기 위해 젖먹던 힘까지 다했던 달리기, 손에 땀을 쥐게 했던 이어달리기, 운동장 한 쪽에 자리를 깔고 부모님과 함께 먹던 사이다와 감, 그리고 찐 땅콩…. 그 당시 운동회는 온 가족이 참여하는 연중 가장 큰 행사였고, 마을의 신명나는 축제였다.
그랬던 운동회가 요즘에는 '확' 달라졌다. 천편일률적인 운동회가 아닌 개성있는 프로그램을 갖춘 운동회가 속속 늘고 있는 것이다.
18일 오전 대구시 달성군 서재초교(교장 이태상). 태풍 '나리'가 지나가면서 잠시 비가 그친 이날 가을운동회가 열렸다. 운동장 위에 걸린 만국기는 예전과 다르지 않다. 이 학교가 이번 가을 운동회에서 가장 자랑거리로 내세운 것은 독특한 입장식. 청군, 백군으로 나눠 줄을 지어 운동장에 들어오던 그동안의 운동회와 달리 올해엔 기발하고 창의적인 입장식을 선보이기로 한 것이다.
9시가 조금 넘어 드디어 입장식이 시작됐다. 한복을 입은 어린이들이 태극기와 교기를 들고 선두에서 행진하고,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최 성공을 기원하는 피켓을 든 어린이들이 그 뒤를 따른다. 이어 6학년들이 '꿈을 열자! 미래를 열자!'는 주제로 과학자, 요리사, 농부, 군인, 의사 등으로 분장해 운동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어른들이 입는 옷을 구해와 입었지만 요즘 아이들은 6학년만 돼도 어른에 버금가는 체격을 지녀 별로 어색하지 않다. 손으로 V자를 그려보이는 아이, 얼굴 가득 웃음을 짓는 아이, 조금은 쑥쓰러워하는 아이 등 저마다 표정은 달랐지만 어린이다운 순진함이 묻어난다.
이어 5학년들은 '꿈을 가지고 커가요.'라는 주제로 영화 주인공으로 분장했고, 4학년들은 '동화 속의 나라'라는 주제로 곰 등 여러 가지 동물 가면을 쓰고 입장했다. '숲 속의 꼬마 요정'을 주제로 해 피터팬에 나오는 팅커벨로 분장한 3학년, '반짝이 세상'을 주제로 화려한 옷을 입은 2학년, '우리 것이 좋아요!'를 주제로 도깨비 방망이 등을 든 1학년도 귀여웠다. 마지막으로 유치원생들은 '꽃을 찾는 친구'라는 주제로 나비 분장을 하고 앙증스런 모습을 선보였다.
한복을 입고 입장한 4학년 김성현(10) 군은 "전래동화에 나오는 주인공을 떠올리며 한복을 입었다."며 "저마다 다른 옷을 입고 입장하는 모습이 무척 재미있다."고 했다. 김 군의 어머니 이춘자(41) 씨는 "입장식에 참가한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절로 웃음을 짓게 된다."고 얘기했다. 녹색 반짝이 옷을 입고 요정으로 분장한 이동희(9) 군도 "입장식이 재미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입장식에 이어 성화가 운동장에 모습을 나타낸다. 학교 인근에 있는 와룡산 정상에서 채화한 성화를 어린이들이 이어 달리며 성화대에 불을 붙였다. 성화대에서 불꽃이 솟아오르자 어린이들은 함성을 터뜨렸다.
이희윤 교감은 "오늘 운동회는 900여 명에 이르는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와 지역 어르신들이 함께 참여하는 화합의 행사로 마련했다."며 "운동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웃고,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입장식을 개성있게 마련했다."고 귀띔했다.
차전놀이를 비롯해 태극 부채춤, 엄마 어부바!, 장수만세, 바구니 터뜨리기 등 운동회의 레퍼토리도 전보다 다양해졌다. 운동회에 먹을거리가 풍성한 것은 예전과 마찬가지지만 요즘에는 집에서 음식을 싸오기보단 학교 앞에 있는 가게나 상인들에게 주문을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계란이나 땅콩 삶은 것이나 감과 사과와 같은 과일, 김밥, 사이다 등을 싸오는 것은 거의 사라지고 요즘엔 학교 앞에 진을 치고 있는 가게나 상인들에게서 통닭, 피자 등을 시켜 먹는다. 한 학부모는 "요즘에는 평소에도 먹을거리가 많아 운동회에 음식을 준비해 오더라도 아이들이 잘 먹지 않는다."며 "대신에 평소에 먹고 싶어하던 통닭이나 피자를 시켜주는 학부모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글·이대현기자 sky@msnet.co.kr
사진·박노익기자 noik@msnet.co.kr
♠ 군악대 연주·의형제…우리학교만의 개성 가득
"비슷비슷한 운동회는 노(NO)! 우리는 개성 있는 운동회를 연다!"
대구 도남초교는 노는 토요일인 지난 8일 운동회를 열었다. 학부모(특히 아빠)는 물론 동창회 회원 등 지역민들과 학생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운동회를 마련하기 위해 '놀토'에 운동회를 맞췄다. 또 인근 50사단 군악대가 운동회에 참여, 의식과 퍼레이드를 보여줘 씩씩한 국군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박수를 보냈다.
죽곡초교는 20일 '국악으로 펼치는 운동회'를 열었다. 운동회 때 연주되는 모든 음악을 교내국악단이 직접 연주하고, 악대 퍼레이드 등의 행사도 가졌다. 신매초교는 10월에 열리는 운동회에서 학생들의 난타공연, 차전놀이, 성화봉송 등을 선보인다. 학생, 학부모, 교사가 함께하는 신나는 산타 공연과 전통 복장과 장비를 갖춘 차전놀이 등을 통해 운동회 참가자들의 흥미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8일 운동회를 연 욱수초교는 '가족활동 중심 운동회'를 모토로 엄마와 함께하는 난타 한마당, 가족 달리기, 엄마와 함께 춤을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다사초교는 20일 열린 운동회에서 수준별 학년 달리기를 새로 선보였다. 만년 꼴찌 학생을 능력별로 따로 조편성을 해 달리기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고, '나도 1등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서였다.
봄에 운동회를 연 학교들 가운데서도 특색 있는 운동회가 많다. 송정초교는 '의형제 한마당 축제'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거주지 중심으로 1~6학년을 12명 정도씩 모두 64개의 의형제 고리를 만들어 운동회에 참여시켰다. 고리던지기, 투호, 탁구공 계주, 줄씨름 등을 의형제 고리별로 경기를 하면서 서로 화합하는 시간을 가졌다. 핵가족화로 형제가 없는 어린이들에게 우애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이 프로그램의 취지였다. 내서초교는 모든 어린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마주 서서 2인 1조 줄넘기 행사를 열었다. 대산초교는 장애 학생들과 함께하는 합동 운동회를 통해 장애 학생에게는 용기와 기쁨을, 비장애 학생들에게는 배려와 사랑을 배우게 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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