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기 밴텀급·킥복싱 플라이급 챔프
"한국인 최초의 일본여성챔피언이 되고 싶어요. 내년에는 꼭 꿈을 이루겠습니다."
160cm에 48kg. 깔끔한 외모까지 갖춘 그녀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링에 오르기 전까지는 격투기선수라는 생각이 들지않을 정도로 평범했다. 그러나 김태경(26·구미 영무체육관) 씨는 한국 여자격투기 경량급의 간판스타로 격투기 밴텀급 챔피언이자 킥복싱 플라이급 챔피언이다.
지난해 12월 허리부상으로 잠시 링을 떠나있던 그녀는 지난 9월 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여자입식타격경기 한일대항전 'J-GIRLS'에 출전, 일본 가라데 챔피언인 마유미를 2라운드 KO로 제압하고 재기에 성공했다. 3대 3으로 진행된 이날 전적은 1승1무1패로 호각지세. 상대인 마유미는 J-GIRLS 미니플라이급 5위에 랭크된 강자였다. 이번 승리로 그녀는 한국 여자격투기의 체면을 살리면서 일본챔프 도전 꿈에도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섰다.
"내년 중반까지는 챔프타이틀을 따낼 겁니다."
그녀의 통산 전적은 17전 12승 5패. 꽤 괜찮은 성적이다. 그녀의 주공격 무기는 콤비네이션. 이날 경기에서도 마유미 선수가 치고들어오자 그녀는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작렬시킨 데 이어 상대가 주춤하자 오른발, 왼발 연속 로우킥과 니킥(무릎올려치기)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K-1이나 PRIDE, UFC 등의 종합격투기 경기가 인기있는 대중스포츠로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여성격투기도 저변을 확대해가고 있다.
김태경 씨는 사실 고교시절에는 '문제아'였다. 그녀는 그러나 '불량소녀'는 아니었다는 사족을 덧붙였다. 놀기좋아하는 성격 탓에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만 했을 뿐, 나쁜 짓을 하지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다못한 부모님이 대구에서 구미로 그녀를 강제로 전학을 시킨 것이다. 구미에서 살게 된 그녀는 졸업 후 곧바로 취업했다가 합기도를 하고싶어서 체육관을 찾았다.
영무체육관의 배영준 관장은 투지가 넘치는 그녀의 눈을 보고는 선수를 하라고 권했다. 기량은 형편없었지만 지기싫어하는 성격이 눈빛으로 드러나 한눈에 보기에도 선수감이었다. 합기도에서 무에타이로 바꾸게 된 것은 구미에서 열리는 무에타이 시합을 보고나서였다. 무에타이의 빠른 발놀림과 현란한 기술을 보고서 그녀는 '내가 할 것은 바로 이거다.'라며 무에타이를 배우기 시작했다.
2003년 데뷔전을 치렀다. 지난해까지는 승승장구했다. 한국에서는 상대할 선수가 없어 주로 일본과 태국 등지의 해외경기에 주력했다. 자신의 체급인 미니플라이급(48kg) 선수층이 얇은 탓에 지난해 12월 남자선수들과 훈련을 하다가 허리부상을 입었다. 지난 3월 한국격투기챔피언 방어전을 끝으로 한동안 경기를 하지못했다.
'강한 여자' 김태경 씨도 집안 얘기가 나오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한때 부모님과 인연을 끊으려고 한 적도 있어요. 그러나 이제는 다치지 않고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을 보고 성원을 하고 있어서 큰 힘이 돼요."
얼마 전 일본시합을 앞두고 그녀의 아버지는 뇌경색으로 쓰러졌단다. 오빠 혼자서 꾸려가는 가계가 걱정이 된 그녀는 운동을 때려치우고 돈을 벌려고 했다. 그러나 오늘까지 자신을 이끌어준 배 관장에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부모님 여행을 보내드리고 싶고 시합이 없을 때 짬을 내서라도 부모님과 자주 함께하고 있어요."
배 관장도 "여기서 포기하면 아깝지 않으냐. 일본챔피언까지 얼마 남지않았다."며 그녀를 설득했다.
그녀는 왜 남자들도 힘든 격투기선수생활을 계속하는 것일까?
"운동을 시작한 이후 김태경이라는 내 이름이 유명해졌어요. 일본챔피언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는 게 목표입니다." "사각의 링에 올라 일본팬들이 삐뚤삐뚤하게 '김태경 파이팅'이라고 쓴 팻말을 흔들면서 응원을 해주기라도 하면 저절로 킥에 힘이 들어가요." 이번 경기가 끝난 후 한 일본팬은 4년 전부터 자신의 팬이라며 찾아와서 함께 사진을 찍고 격려하기도 했다.
그녀의 최대 고민은 스폰서문제. 서울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은 기량이 떨어져도 조금만 이름이 알려지면 후원사를 구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특히 남성팬들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 미모의 여성격투기선수들은 더더욱 쉽다. 그러나 지방소도시인 구미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녀로서는 기업후원을 받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녀는 "이번 11월 경기에서 이긴다면 일본 내에서의 인기도 크게 올라갈 것"이라며 별로 걱정하지 않는 눈치다.
아직 남자친구는 없다. "이제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선수로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않기 때문이리라. 그래선가 그녀의 입에서는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있고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좋지 않을까요." 라는 조건이 튀어나왔다.
내년 중반쯤에는 일본챔프 타이틀을 거머쥔 그녀의 투혼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글·사진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 국내 여성격투기 현황
우리나라에서 여성격투기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선수층이 얇다.
무에타이로 한국격투기챔피언에 오른 김태경(26·구미 영무체육관)과 함서희(20·투혼정심관), 임수정(22·서울 삼산이글체육관) 등이 국내 여성격투기계에서 최고수준의 파이터들로 꼽힌다.
함서희 씨는 최근들어 성적이 좋지않았지만 지난 9월6일 일본의 여성종합격투기대회인 '스맥걸(Smack Girl)'에 출전, 아유미에게 판정승을 거두며 다시 인기몰이에 나서고 있다.
또 임수정 선수는 시원시원한 외모와 더불어 남성선수들도 구사하기 힘든 하이킥으로 통쾌한 KO승을 이끌어내면서 여성격투기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강자다. 이밖에 전연실 선수도 여성입식타격의 강자로 꼽히고 있다.
인기를 끌고 있는 이들 여성격투기선수들은 상당한 미모를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E.M.A프로모션을 설립, 직접 한국여성격투기선수들의 일본무대 진출에 나서고 있는 배영준 관장은 "여성격투기 선수가 많지않은데다 대부분 몇차례 경기 후에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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