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은채 넉달째 인공 호흡기 연명…아들 살리려 각종 공사장서 막노동
"여보세요." 거친 숨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왔다. 망치질 소리도 끊임없이 들려왔다. 기자가 전화를 한 남자(40)는 경북 김천의 공사장에 있다고 했다. 일거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는 그를 만날 수 없어 대신 대구의 한 병원에서 그의 한 살배기 아들 (허)성진이를 마주했다. 태어난 지 여섯 달 된 성진이는 제대로 숨을 쉬지도, 눈을 뜨지도 못했다. 인공호흡기를 통한 성진이의 거친 숨소리는 공사판에서 일하다 전화를 받았던 그의 아비와 닮아 있었다. 성진이 곁에는 일흔이 넘은 그의 노모가 지키고 있었다. 기자는 노모를 통해 병마가 할퀴고 간 부자의 안타까운 삶을 엿볼 수 있었다. 한마디 한마디를 힘겹게 뱉어내는 노모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처량하게 병실 복도를 울렸다.
지난 5월 11일이에요.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베트남에서 시집와 한국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며느리(32)의 전화가 왔지요. 성진이 몸이 불덩이 같다며 울먹였습니다. 그 길로 병원을 찾았고 의사는 심한 감기 증세를 보인다며 며칠간 병원 치료를 권유했습니다. 약을 먹은 아이는 한동안 안정을 되찾는 듯했지요. 하지만 모유를 먹지 못해 토하는 날이 늘어갔고 또다시 고열과 경기 증세가 나타나더군요. 동네 병원에선 성진이를 큰 병원으로 옮겨 정밀 진단을 받으라고 했지요.
뇌수막염. 뇌막에 염증이 생기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성진이가 그 병에 걸려 뇌기능을 잃고 있다고 하더군요. 거의 매일 피를 뽑아 성진이의 상태를 진단했던 의사들의 표정이 날로 굳어지더군요.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 4개월이 흘러버렸습니다. 태어나 스스로 숨을 쉰 날보다 의식을 잃은 채 인공호흡기로 연명한 날이 더 많은 성진이를 아비는 차마 마주하지 못했지요. 늦은 밤 병원에 들러 몸무게가 5kg도 되지 않는 핏덩이를 보며 울음을 삼키는 아비의 뒷모습에 저는 미어지는 가슴을 쓰다듬어야 했습니다.
아비는 천륜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아들을 살리겠다는 의지로 전국의 공사장을 찾아다녔습니다. 막노동으로 하루 5만 원씩 버는 돈은 모조리 병원비로 들어갔지요. 하지만 성진이의 몸을 관통하는 호스는 날로 늘어만 갔습니다. 뇌기능이 차츰 사그라지면서 어느새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상태가 돼 버렸지요. 병원에선 성진이가 완치된다고 하더라도 뇌기능이 돌아올 수 없다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아비에게 차마 이 말을 전할 수가 없더군요. 부모 앞에 불효를 할 수 없다며 서른일곱의 늦은 나이에 어렵게 가정을 이룬 그에게 저는 차마 아들을 포기하라는 말을 할 수 없었지요.
최근에는 집문제가 아비의 숨통을 죄고 있습니다. 며칠 전 아비와 며느리, 우리 식구가 살았던 집의 소유권이 이전됐다는 통보가 왔지요. 저의 큰아들(45)이 성진이 아비 앞으로 진 카드빚 1천만 원과 성진이 병원비 1천만 원이 원인이라고 했지요. 추석 명절만 쇠고집을 비우겠다는 늙은이의 말을 다행히 집주인이 믿어주더군요. 이제 추석이 일주일 남았네요. 자식을 궁지로 내몬 이 늙은이가 과연 조상 얼굴을 대할 수나 있을는지.
올 추석 땐 염치불구하고 조상님께 빌어야겠습니다. 우리 성진이 대신 절 데려가 달라고···. 이렇게라도 자식을 도와줄 수 있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제가 너무 오래살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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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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