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서브프라임 위기와 세계화

입력 2007-09-19 07:03:53

1492년 10월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상륙, 세계가 둥글다는 것을 처음으로 입증했다. 그로부터 500년 이상이 지나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마스 L. 프리드먼은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방갈로르를 여행한 뒤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세계는 평평해(The World is Flat)."

그는 이를 제목으로 달아 책을 펴냈고,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올랐다.

'세계가 평평하다'는 말은 정보기술의 눈부신 발달로 인해 비즈니스를 비롯한 제반 영역에서 여러 가지 장애물들이 사라지면서 누구든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게 됐고, 세계가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세계가 평평하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주택자금을 빌려주는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신용등급이 높으면 프라임(Prime), 낮으면 서브프라임(Sub Prime)이며, 그 중간은 알트A(Alternative A) 모기지다.

2000년대 들어 과잉 유동성과 저금리 체제 하에서, 부동산가격의 급등과 투기 붐에 편승한 모기지 업체들 간의 과당경쟁으로 미국 모기지 시장에서 서브프라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2년 말 3.4%에서 2006년 말에는 13.7%로 급상승했다.

모기지 회사들은 담보로 잡은 주택을 대상으로 MBS(주택저당증권)나 CDO(부채담보부증권)와 같은 파생상품을 만들어 우량 자산은 일반은행이나 투자은행에, 신용도가 낮은 고위험·고수익 채권은 투기성이 강한 헤지펀드에 팔았다.

그러나 급상승세를 보이던 미국의 집값이 하락세로 돌아서는 가운데, 2004년 이후 FRB(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무려 17차례에 걸쳐 정책목표금리를 1.0%에서 5.25%로 올렸다.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 가계들이 원리금을 제때에 갚지 못하자 서브프라임의 연체율은 20%로 급상승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은 CDO처럼 파생상품에 투자한 금융회사들에 전이되면서 복잡한 거래로 얽혀있는 세계 금융시장에 걷잡을 수 없는 충격파를 던졌다. 서브프라임 부실의 쓰나미는 프랑스 최대 상업은행인 BNP파리바를 비롯, 골드만삭스, 바클레이즈, AIG 등 세계 유수 금융회사들뿐만 아니라, 아시아 금융시장에도 타격을 가했다.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장기불황과 함께 장기간 지속된 일본의 초저금리로 인해 세계 각국으로 흘러나갔던 1조 달러가량의 엔캐리 자금이 서브프라임 사태를 맞아 청산할 움직임을 보이자 금융시장의 불안정은 한층 더 증폭됐다. 그러자 전 세계 투자가들이 서둘러 위험자산을 줄이고 안전자산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신흥시장(emerging market)의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한 반면, 안전자산인 미 국채와 금 가격은 강세로 전환했다.

급기야 FRB와 ECB(유럽중앙은행) 등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거액의 긴급자금을 방출하고 금리를 내리거나 동결함으로써 우선 급한 불은 껐다. 모기지 대출 부실로 인해 입은 총 손실 규모가 2천500억 달러에 달하긴 했으나, 미국 금융회사들의 자기자본비율이나 당기순이익 규모를 고려할 때 충분히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CDO 규모는 모두 8억 4천만 달러지만, 대부분 신용등급이 양호해 평가손실 규모가 3천800만 달러에 머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역시 국내 금융회사들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

그러나 이번 사태 진원지인 미국 모기지 대출의 부실이 완전 해소되지 않고 있다. 다양한 파생상품이 서로 얽혀있어 부실규모 전체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움에 따라 신용경색 현상의 전염, 확산은 여전히 불씨다.

정부나 기업 등 각 경제주체들은 세계 경제의 잠재적 위험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이 위기는 저금리를 배경으로 한 과잉 유동성이 무절제한 투기자본과 결합할 경우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줬다. 벽과 울타리가 사라지고 부문 간 연계성이 한층 더 커진 글로벌 시대에 지구 한쪽에서 지펴진 위기의 불씨가 삽시간에 전 세계로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세계는 평평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이화언 대구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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