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이하 선진화 방안)을 둘러싼 정부와 언론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기사송고실 폐지 및 합동브리핑룸 설치와 활용을 두고 힘겨루기가 한창이며, 선진화방안에 대한 국무총리 훈령이 다소 완화됐음에도 설전은 계속되고 있다. 사이사이 엠바고(보도유예)를 파기한 언론사 제재 방안, 출입증 발급 등에 대한 논란도 끼었다. 지난 5월 노무현 대통령이 선진화 방안을 발표한 이후 넉 달째다. 막판으로 접어들고 있는 정부와 언론 사이 논란의 주요 쟁점을 정리해본다.
▨ 핵심 쟁점은 취재 제한
당초 선진화 방안의 주요 내용 중에는 취재 제한이 심각했다. 전화 취재든 대면 취재든 공무원과 접촉하려면 반드시 홍보관리관과 미리 협의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 이렇게 되면 기자와 공무원 양쪽 모두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누구와 통화하고 누구와 만났는지 모두 파악되고 기록으로 남겨진다면 기자는 활동이 제약될 것이고, 공무원의 입은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정부의 논리는 이랬다. '출입기자단이 무단출입을 통한 어설픈 정보로 아니면 말고 식의 기사를 양산할 것이 아니라 보다 책임 있는 정보를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취재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부처의 정책에 대해 가장 공식적인 입장을 가진 정책홍보관리실을 경유해 전화 취재와 대면 취재를 하는 것은 선진 각국의 취재상식이다.'(국정브리핑)
그러나 언론자유의 심각한 침해라는 비판에 밀려 다소 수정됐다. 사전 협의 의무 조항을 삭제한 대신 전화·대면 취재가 가능한 공무원의 범위를 제한하고 사전에 약속하도록 한 것이다. 언론의 반발은 여전히 피하기 어렵다. '정부 수정안은 여전히 실질적으로 취재접근권을 제약하고 있다. 언론이 전화로, 또는 직접 만날 수 있는 공무원은 실·국장급 이상으로 제한되며, 그것도 사전 약속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언론의 취재접근권 요구가 주로 정책입안이나 민원처리 과정의 실무담당자를 염두에 둔 것임을 감안하면 미흡할 수밖에 없다.'(신문 사설)
이에 대해 정부는 자기 편의만 염두에 둔 언론의 관행을 개선하라고 요구한다. '기본적인 취재 예의이자 신뢰관계인 사전약속을 하고 정책정보에 책임 있는 답변을 할 수 있는 실·국장급 간부를 만나는 것이 '독소조항'인가? 이 같은 터무니없는 주장을 들여다보면 지금 시곗바늘이 어디에 있는지 의심스러워진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말을 해주는 직원을 골라 취재하는 것이 언론의 자유이며 국민의 알권리를 대변한다고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구시대적인 발상이다.'(국정브리핑)
▨ 통합브리핑룸 설치 득과 실
정부부처에 각각 마련돼 있는 기자실을 통합하는 문제는 현실적인 문제다. 정부가 관리의 효율성, 정책 홍보의 일원화 등을 이유로 통합을 강행해 결국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자 기자들이 사용을 거부하는 대결 양상으로 접어들었다. 일부 부처 기자들은 통합브리핑룸 사용을 거부하며 복도에 나앉아 성명서를 발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엊그제 각 신문에 실린 사진 한 장은 대한민국이 과연 민주공화국인가 하는 근본적 의문을 갖게 했다. 정부의 외교부 브리핑룸 신축 공사 강행으로 쫓겨난 기자들이 복도에 앉아 대책회의를 하는 서글픈 사진이었다. 이 사진은 군사독재정권보다 더 악랄한 이 정권의 언론탄압을 역사에 두고두고 증언할 것이다.'(신문 사설)
정부의 의도가 악의적이라는 비난도 서슴없다. '국민의 관심사를 자유롭게 취재하는 기자의 통로를 차단하려는 기도는 21세기 선진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기자들을 브리핑룸에 가두려는 이른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은 기자들에게 받아쓰기나 하라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 국민은 노무현 정부가 실정(失政)을 솔직하게 시인하는 것을 본 기억이 없는데도 앵무새가 되라는 것인가.'(신문 사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들은 부처 중심, 기자실 중심의 관행을 깨야 언론이 발전할 수 있다는 안팎의 비판을 논리로 내세운다. 급변하는 세계에 대처하려면 닫힌 기자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출입처 위주 취재 관행은 점점 복잡해지고 전문화돼 가는 사회 변화와 부처의 벽을 뛰어넘는 정책형성 과정을 제대로 따라잡지 못한다. 한 부처에만 매몰돼서는 정책의 일면밖에 볼 수 없고 배타적인 출입기자단 제도로는 입체적 취재가 불가능하다.'(국정브리핑)
▨ 엠바고 파기, 출입증 발급 등의 문제
핵심에서 다소 벗어난 문제들이지만 여러 사설이나 칼럼에서 문제가 제기되고 있으니 짚어볼 일이다. 먼저 엠바고 문제는 일종의 주도권 다툼으로 볼 수 있다. '취재원과 언론이 국익·안보·인명 등에 직결되는 사안에 대해 발표와 보도 시점을 정하고 이를 지키는 '엠바고(embargo·보도유예)'의 주체를 온전히 인정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언론 자유라는 문제가 끼어들면 설 자리가 좁아지는 엠바고의 속성상 정부가 이를 건드리고 나오면 논란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정부는 선진화 방안에서 비보도나 엠바고를 어긴 언론사에 일정 기간 보도자료 제공을 거부하는 등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추진해 말썽을 빚었다. '엠바고와 비보도 문제는 권력의 독단에 맡겨서는 안 되고 언론이 이 같은 요청이 합리적인지, 다른 저의는 없는지 판단해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정권은 엠바고와 비보도 기준을 국정홍보처 차장과 각 부처 홍보 담당 공무원이 정하겠다는 것이다.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지키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신문 사설)
정부 출입 등록을 한 기자가 6개월 중 평균 주 1회 이상 정부 브리핑에 참석하지 않으면 출입증을 회수하겠다는 조치도 반발이 거세다. 독재정권 시절로의 회귀라는 표현까지 난무한다. '기준안은 홍보처에 등록한 등록기자만이 브리핑을 듣게 하겠다고 한다. 언론사 스스로 취재기자를 선정하는 당연한 권리에 등록제란 족쇄를 채운다는 뜻이다. 기준안은 또 브리핑에 일정 횟수 이상 참석하지 않은 기자에 대해서는 출입증을 빼앗겠다고 한다. 공무원 출퇴근 관리하듯 기자의 취재활동을 제 울타리 안에 일정 부분 가둬두겠다는 시도이다.'(신문 사설)
이에 대해 정부는 선진화 방안의 의도를 선의로 봐 달라고 요청한다. 언론 탄압이나 정보 통제가 아니라 언론과 정부의 바람직한 선진형 관계를 구축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선진화 방안은 각 부처별로 폐쇄적으로 운영되던 기자실 대신 개방형 합동브리핑센터를 통해 다양한 언론의 취재·보도활동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고 사회·경제적 발전 정도에 맞게 정보유통의 수준과 관행을 정상화하고 글로벌 스탠다드로 합리화한 것이다.'(국정브리핑)
한편으로는 언론의 사실 관계 왜곡을 꼬집는다. 출입증 문제가 대표적인 경우로 지목된다. '정부청사 출입증은 말 그대로 브리핑에 참가할 수 있는 출입증에 불과하다. 게다가 강제하는 것도 아니다. 정부청사 출입증을 받기 싫다면 신청하지 않아도 된다. 이 경우에도 기자의 자격이 정지된다거나 취재를 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니다. 매번 출입할 때 방문증을 발급받으면 된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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