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을 느낄수가 없어요'…미각장애

입력 2007-09-13 07:34:28

미각장애의 진단을 위해 전기 자극기를 혀 부위에 대어 반응 정도를 검사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미각장애의 진단을 위해 전기 자극기를 혀 부위에 대어 반응 정도를 검사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한 달 만에 체중이 6kg나 줄어 고민하던 이모(43) 씨가 대학병원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그는 혓바닥에 있는 미뢰(맛 봉오리)가 거의 없어 맛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식욕장애가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다.

맛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엔 산해진미가 많지만, 이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살기 위해 먹기는 하지만 그 맛을 알지 못한다면 정말 괴로운 노릇이다.

◆미각, 그 신비의 세계

미각은 인간의 오감 중에서도 밝혀진 사실보다 감춰진 것이 더 많은 분야이다. 미각은 인체의 관문이다. 입에 들어온 음식을 '먹을 것인가, 먹지 말 것인가', 또는 '먹어도 되는 것인가, 해로운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감각 정보를 준다. 혀를 자세히 보면 바닥 표면에 조그마한 돌기 형태의 유두가 수없이 많다. 이 속에 맛을 감지하는 말초기관인 맛 봉오리가 있다. 양파처럼 생긴 맛 봉오리는 혀를 비롯한 구강, 인두, 후두에 분포해 있다. 맛 봉오리는 미각 세포를 포함하고 있어 이것에 맛을 내는 물질이 결합했을 때 맛을 느끼게 된다. 냄새 같은 다른 자극이 없는 상황에서 미각은 단맛, 짠맛, 신맛, 쓴맛의 네 가지 기본적인 맛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일본의 과학자들은 감칠맛을 추가했다. 하지만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 통증이다. 과거 생물교과서에 나왔던 혀 지도(단맛 등 네 가지 맛을 느끼는 혀의 위치를 설명)는 요즘엔 잘못된 상식이다. 특정한 맛에 대한 민감도가 혀의 위치에 따라 약간 다를 수는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혀 전체에서 모든 맛을 느낄 수 있다.

◆미각 장애, 그 원인은

미각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은 매우 다양하며, 그 효과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매우 크다. 특히 후각과 미각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실제로 미각 장애를 호소하는 환자들 중에서 미각 기능의 실질적인 감퇴가 있는 경우보다는 후각 장애와의 혼동의 결과로 미각 이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러한 혼동은 방향성 물질이 코와 입을 통해 후각 수용체에 도달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 후각 장애가 있는 환자의 경우에 음식의 향기를 코에서 느끼지 못하면 환자는 이를 마치 음식 맛이 이상한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신경장애를 받으면 미각 기능이 떨어지거나 상실될 수 있다. 다른 전신적, 국소적 원인에 의해서도 미각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유전적으로 어떤 특정한 물질에 대해 맛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페닐티오요소(phenylthiourea)의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미맹이라고 한다. 미맹은 인구의 15~30%에서 나타난다. 선천적으로 유두에 맛 봉오리가 없어 미각을 느낄 수 없는 경우도 있으며, 악안면(턱과 얼굴 영역)의 성장 발육장애 등으로 미각의 예민성이 줄어서 나타나는 미각 감퇴도 있다.

불결한 구강 위생이 미각 감퇴나 미각 이상을 잘 일으킨다. 또 바이러스나 세균, 곰팡이, 기생충 등이 맛 봉오리를 침범해 발생한다. 집에서 주로 요리를 하는 주부들이 미각 장애로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으나 심한 미각 장애는 성별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세계적으로 미각 장애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인구의 노령화. 노인들은 여러 가지 신체장애로 인해 다양한 약을 복용하는 경우가 많고, 많은 약들이 체내에서 미각세포 재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연을 부족하게 만든다. 또 가공식품의 섭취가 늘면서 각종 미네랄이 부족해지기 쉽고, 이들 식품에 함유된 첨가물들이 아연 부족을 불러 미각 장애를 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

임신부의 경우 내분비 계통의 변화, 정신적, 심리적 요인 등이 미각장애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또 열이 나는 전신 질환이 있을 때 나타나는 구강 내 건조증, 상기도·인두·후두의 만성 질환, 씹는 운동과 타액 분비 장애, 혀 운동 장애, 잘 맞지 않는 보철물 등도 미각 이상을 부를 수 있다. 당뇨병, 갑상선 호르몬 부족, 부신피질의 기능이 떨어진 경우에도 맛을 제대로 못 느끼는 일이 생긴다. 흡연도 미각 기능을 떨어뜨린다.

◆진단과 치료

미각장애가 의심돼 병원에 가면 의사는 최근의 감기증세나 수술 또는 외상 경험이 있는지 등을 물을 것이다.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지도 알아본다. 내시경 및 방사선 촬영 등을 통해 코 질환이 없는지 여부와 구강, 인두, 후두 등을 진찰할 것이다. 이밖에 알레르기, 내분비 질환, 영양 결핍 등의 진단을 위해 피검사가 필요하다. 혀의 유두를 직접 조직 검사를 할 수도 있다. 미각 검사는 크게 화학 자극 검사법과 전기 자극 검사법으로 구분된다. 화학 자극 검사는 단맛, 쓴맛, 신맛, 짠맛을 내는 물질로 혀와 연구개에 자극을 줘 검사하는 것이다. 전기 자극 검사는 전기 자극기를 혀 부위에 대어 반응 정도를 기록하는 방법이다. 치료는 앞에서 열거한 많은 원인들을 하나씩 점검해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고 미각 검사를 실시해 그 결과에 맞게 치료를 한다.

김교영기자 kimky@msnet.co.kr

도움말·예미경 대구가톨릭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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