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대입 재앙' 현실로] (상)'新 3不' 대입정책

입력 2007-09-12 10:06:34

"정시모집 '감'을 못잡겠어요"

▲ 수시모집은 객관적인 지원 잣대를 만들기가 힘들어 수험생들이 대학·학과 선택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진은 수시모집 상담을 하는 대건고 학생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 수시모집은 객관적인 지원 잣대를 만들기가 힘들어 수험생들이 대학·학과 선택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진은 수시모집 상담을 하는 대건고 학생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우리나라에서 의예과가 있는 대학은 다 알아봤습니다. 그 중 9곳에 원서를 냈습니다. 경쟁률이 100대 1은 훨씬 넘을 겁니다. 어느 한 곳도 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는 안 하지만 정시모집이 워낙 걱정돼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11일 대구 한 학원의 상담실에서 만난 고3 학부모는 수시2학기 원서 접수를 위해 학교와 학원, 입시설명회장을 한 달 이상 돌아다녔다고 말했다.

"설명을 듣고 대입 제도를 알아갈수록 불안감은 더 커졌습니다. 아이 성적이 상위권이긴 하지만 자칫 실수를 해서 등급 경계선에라도 걸려 떨어지면 재수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나니 기가 막혔습니다."

2008 대입 제도를 두고 신(新) 3불(不)이라는 표현이 떠오르고 있다. 불안(不安)과 불신(不信)과 불만(不滿)만 키운다는 비아냥이다. 본고사, 기여입학제, 고교등급제를 금하는 원래의 3불 정책에 대한 불만도 담긴 듯하다.

수시2학기 모집에서 상위권 대학들이 지난해보다 훨씬 높은 수십대 일의 평균 경쟁률을 기록한 데 대해 입시전문가들은 "어느 정도 예견됐지만 정시모집에 대한 학생들의 불안감이 이 정도일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수험생들의 지원 경향은 수시와 정시에 따라 크게 달랐다. 내신성적이 좋은 일부 수험생은 수시에 치중했지만, 수능시험을 잘 치러 정시모집에 승부를 걸겠다는 수험생이 훨씬 많았던 것.

그러나 올해는 수능이 등급제로 바뀌며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난이도 조절이 잘못되거나 실수를 해서 한 등급이 내려가면 만회할 길이 없어지기 때문. 지난해에는 표준점수나 백분위 총점으로 당락이 결정됐기 때문에 한 영역을 다소 망쳐도 다른 영역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만점을 받은 수험생이나 1등급 최저 경계선에 걸린 수험생이나 총점 차이가 얼마가 나든 같은 1등급으로 처리한다. 영역 상호간 총점으로 보완할 수 있는 여지가 사실상 사라진 셈이다. 그만큼 수능시험은 살 떨리는 승부가 됐고 수시모집의 기회를 소홀히 할 수 없게 됐다.

대학별 내신 반영방법이 여전히 불투명한 점도 수험생들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교육부의 강요로 실질반영비율을 어느 정도 높였다고 하지만 대학들이 등급 간 점수 차이를 각기 다르게 하거나 수험생 지원이 많은 특정 등급에서 차이를 최소화하면 내신은 무력화될 가능성이 크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수험생들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는 것이다.

불신이 가져다주는 폐해는 더욱 커보였다. 상담실에서 만난 또 다른 학부모는 기자에게까지 의견을 물어왔다. 여러 곳에서 상담을 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더니 사연이 참으로 답답했다. "학교에서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해서 경북대에 원서를 내기로 했는데 한 학원에 갔더니 어림도 없다며 두 단계 정도 낮추라고 하더군요. 이 학원 저 학원 다녀봤는데 각자 이야기가 다르고, 속 시원한 답변은 한 군데서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실제로 수시모집은 수능시험이라는 단일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객관적인 지원 잣대를 만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올해처럼 지원자가 폭증해 경쟁률이 높아지면 합리적인 근거를 찾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한 고3담당 교사는 "솔직히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으로 상담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일부 사립고는 몇 해 동안의 학교 자료를 꾸준히 분석해 그나마 비교할 근거가 있지만 상당수 고교에는 대책이 없다."며 "사교육시장에 족집게 상담까지 설쳐대니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믿고 기댈 곳이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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