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고생하며 산 우리 엄마, 병마로 잃은 시력 찾아주고 싶어요"
부끄럽습니다만 저는 7개월 된 딸을 혼자 키우고 있는 서른다섯 살의 미혼모, 김해숙(가명)입니다. 저의 슬픈 가족사를 전할까 합니다.
대구의 한 상업고등학교를 야간으로 졸업하고 집을 떠났습니다. 무남독녀여서 부모님께서 절 무척이나 아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저는 이를 부끄러워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 분명 부끄럽고 창피했습니다. 정신지체를 앓았던 엄마는 친척이 운영하는 여관에서 청소나 설거지 등 뒤치다꺼리를 해주고 한두 푼씩 돈을 받아 살림에 보태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도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었지요. 아버지는 길거리에 버려진 책을 줍거나 누군가로부터 책을 싸게 얻거나 헌책방을 뒤져 싸게 구입한 책을 리어카에 싣고 다니며 역이나 학교 주변에서 팔아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방 한 칸 달세방에서 살아야 했고 계절이 바뀌어도 옷차림조차 바뀌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두 분의 뒤치다꺼리에 아주 바빠했고 힘들어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집을 뛰쳐나온 뒤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지긋지긋했던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했거든요. 저는 한 전자부품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을 하기 시작한 후 자동차부품 공장, 타이어 공장, 안경 공장, 휴대전화 공장까지 돈을 조금이라도 더 주는 곳으로 옮겨다녔습니다. 대구, 경주, 구미, 포항, 경산 등지에서 죽어라 일만 했습니다.
그러다 한 남자를 알게 됐고 같이 살게 됐습니다.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고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지만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다는 그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너무 오래 잊고 살았던 가족애를 느끼며 행복이 이대로 계속되기만을 바랐지요. 하지만 그 남자와 저는 차츰 변해갔고 서로 못할 말을 하면서 참지 못해 결국 헤어졌지요.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그 시점부터 제가 입덧을 시작했습니다.
돌아올 곳은 집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찾은 대구 수성구의 한 영세민아파트. 저는 제가 얼마나 큰 잘못을 하고 살았는지 알게 됐습니다. 오랜 기간 당뇨를 앓아왔던 엄마는 백내장과 녹내장으로 왼쪽 눈이 실명이 된 상태였지요. 한쪽 눈밖에 보이지 않으니 똑바로 걷지 못하고 '게'처럼 옆으로 한발씩 옮겼습니다. 형광등이 꺼져있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고 손녀를 앞에 놓고도 더듬거리며 찾아야 했습니다. 바퀴벌레가 득실거려도 몰랐고 그릇이 제대로 씻겼는지 확인조차 할 수 없는 답답한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청소가 전혀 안 된 집안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제가 집을 나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리어카를 끌고 가다 트럭과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했고 한쪽 발을 절며 살아오다 4년 전 길거리에서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엄마는 당뇨 후유증으로 올해 초 오른쪽 눈마저 시력을 잃었습니다. 게다가 신장도 제대로 기능을 못해 혈액투석을 하고 있습니다. 손가락 발가락 끝이 자꾸 시리다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제 소원은 다시 되돌릴 수만 있다면 엄마의 두 눈을 수술해 딸 예은이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몹쓸 딸이 사람구실하는 것도 꼭 보여주고 싶네요. 무럭무럭 커가는 예은이를 꼭 보여주고 싶은데…. 평생을 고생 속에서 산 우리 엄마가 너무 불쌍합니다. 저희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주)매일신문사입니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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