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9월 8일 존 하지 중장이 이끄는 미군 제24군단 예하 7사단 병력이 인천항을 통해 서울에 들어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군을 환영하기 위한 인천의 군중들을 향해 일본군이 사격을 가해 2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당하는 불상사도 일어났다. 하지만, 미군은 일본군의 행동을 지지, 우리 국민의 원성을 샀다. 이후 미군은 서울로 들어와 조선총독과 일본 지휘관으로부터 항복을 받고 무기를 압수했다.
그해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자, 미국과 소련은 8월 25일 우리나라를 38선으로 분단점령하겠다고 발표, 맥아더사령부도 '나의 지휘 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한다.'고 남한점령책을 발표, 점령군으로 국내 진입한 것이다.
9월 11일 하지 중장의 미군 시정방침 발표와 아널드 소장의 미군정장관 취임에 이어, 19일 '재조선 미육군사령부 군정청'이 공식 발족해 남한 통치에 들어갔다.
하지만, 미군정은 9월 14일 총독부의 일본인 관리들을 행정고문으로 두고 일본의 식민지 통치기구를 그대로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이후 발생하는 수많은 민중 폭동의 원인을 제공하게 되고 지금도 과거사 진상 규명이라는 논란의 불씨를 제공하게 된다.
▶ 1858년 무굴제국 멸망 ▶ 1988년 국방부, 방위성금 폐지 결정
정보관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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