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문의 펀펀야구] "야구 보니 인생이 보이더라"

입력 2007-09-07 09:21:30

위암선고 후 전국 돌며 삼성 응원…3년 후 암세포도 '스트라이크 아웃

어느날 무심코 건강 진단을 받다 암 진단을 받았다고 상상해보라. 아마 하늘이 무너질 것이다. 목숨이 걸린 절체절명의 위기가 왔을 때 인간으로서 선택의 폭은 참으로 좁다. 정말 무엇에 의지할 것인가?

대구 반야월 초교를 다니다 서울로 이사해 학업을 마친 권태열(38) 씨는 군 복무 기간 중 지원 해 상사 계급까지 진급하게 됐다. 결혼해 두 딸을 두었고 청주에 살면서 군 업무에 충실해 평범한 생활을 하던 2003년 11월, 그는 느닷없이 위암 2기 진단을 받았다. 6개월간 수술도 받고 방사선 치료도 했지만 암세포는 간으로 전이되고 말았다.

2004년 봄이 채 끝나기 전에 자신만 모르는 사망선고가 가족들에게 전해졌고 그들에게 그해 여름은 잿더미가 된 벌판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치료 중 별 할 일이 없었던 그에게 유일한 낙은 야구경기 시청.

대구에서 태어나 초창기 삼성 라이온즈 어린이 회원이 되었던 인연으로 그는 삼성을 응원했는데 2004년 그해 삼성 라이온즈는 묘하게도 그의 삶처럼 파란만장한 굴곡을 그려가고 있었다. 대구에서 벌어진 어린이날 경기에서 8대3으로 리드하던 삼성은 9회 현대 정성훈에게 만루홈런을 허용하면서 대역전패의 참사(?)를 겪었고 이후 팀 최다 연패인 10연패의 수렁에 빠져들면서 순식간에 꼴지로 추락했다.

그러나 5월 하순부터 반격을 시작, 시즌 막바지까지 상승세를 이어갔고 현대와 치열한 선두타툼을 벌였다. 극과 극을 달린 그해 삼성은 결국 두산과의 플레이오프에서 3연승을 거두면서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한국시리즈 4차전에 배영수의 10이닝 노히트 노런에도 불구하고 무승부를 기록하자 그는 참으로 변화무쌍한 야구가 인생의 축소판처럼 느껴졌고 비가 오는 가운데 치러진 9차전에서 초반 대량실점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끈질긴 추격전을 펼치는 선수들의 투혼에 승패를 떠나 감동했다. 그리고 자신이 투병하고 있는 암과의 승부도 야구처럼 역전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삼성과 묘한 동질감을 느끼면서 야구에 매료된 권 씨는 2005년 1월 결국 의가사 제대를 했고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2005년 삼성의 전 경기를 관람했다.

힘들었지만 마침 그가 살고있는 청주는 전국을 다니기에 가장 알맞은 위치에 있었다. 그의 여정은 한결 같았다. 2005년 우승 후 코나미컵 대회도, 괌 전지훈련도 함께 했다. 그는 진심으로 선수들을 응원했고 한편으로 그 기쁨으로 스스로 위안을 받았다.

그러던 2006년 6월 그는 담당의사로부터 뜻밖의 전갈을 받았다. "참 신기하네요. 이거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이예요." 몸속의 암세포가 사라졌다는 통보를 죽었다 살아나는 야구 규칙에 비유한 말이었다.

그는 감격에 겨워 울었다. 야구에 의지해 새 생명을 얻었다고 믿는 그는 지난해 말부터 진갑용 팬클럽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올해도 어김없이 야구가 있는 날이면 열차에 몸을 싣는다. 이제 그의 소원은 그가 받은 축복을 담아 대구구장에서 폼나게 시구하는 것이다.

최종문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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