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든 감자는 초록뿔을 밀어 올린다
박진형
먹다 만 감자를 라면 상자에 넣어
베란다에 내어다 놓고
겨울 내내 잊고 살았다
아무도 몰래, 침침한 시간 속에서
멍든 감자는 초록뿔을 밀어 올렸다
쥐는 뿔이 없다
멍든 감자에게는 뿔이 있다
푸른 싹을 밀어 올리는 영혼은
초록의 감자쥐다
칼로 두개골을 잘랐을 때
상한 시간의 냄새를 풍기며
비로소 감자쥐는 울었다
초록뿔의 울음이
지상에 널린 비천한 마음을
가만가만 들어 올린다
이를테면 감자가 몸을 둥글게 만 쥐라는 그 말씀. 그 모습이 또한 움켜쥔 주먹 같다는 그 말씀. 그 주먹은 남을 향해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푸른 멍을 제 몸에 새기게 되었다는 말씀이겠다. 멍이 든 감자는 쥐처럼 몸을 웅크리고 아무도 몰래 뿔을 밀어 올렸으니, 뿔이 살갗을 찢고 올라올 때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남들이 다들 학교에 다니던/열일곱의 나이, …원사공장(原絲工場) 지잉징 달아오르는/기계소리에 갇혀 밤샘"했던 침침한 시간을 견디며 마침내 밀어올린 푸른 싹의 영혼. 상한 시간을 가르고 초록뿔이 돋는 순간, 비로소 감자쥐는 울었다고 시인은 쓴다. 부사 '비로소'의 무게로 쓴다. 수챗구멍으로만 다니던 내 비천한 마음도 덩달아 위로를 받는다. 초록을 찍어 눌러쓴 그 시편으로.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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