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검토하겠다"

입력 2007-09-01 10:09:47

사람의 말귀를 선뜻 알아듣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서 뱉은 말보다는 분위기를 통해 그 속뜻을 짐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魏(위)나라 조조와 蜀(촉)나라 유비가 漢中(한중) 땅을 놓고 싸울 때, 전쟁이 지리멸렬해지자 조조는 진격할 것인지 후퇴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부하 한 사람이 내일의 상황을 묻고자 밤늦게 조조를 찾아가니 조조가 다만 "鷄肋(계륵)"이라고만 할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부하는 그대로 돌아와 계륵이 무슨 뜻이냐고 막료들과 의논을 하는데 아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유독 부하 楊修(양수)만이 조조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고 내일은 틀림없이 철수명령이 내려질 테니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주변에서 묻자 "계륵 즉 닭갈비는 먹음직한 살집은 없지만 그냥 버리기는 아까운 것이다. 결국 이곳을 버리기는 아깝지만 대단한 땅은 아니라는 뜻이니 버리고 돌아갈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의 말은 적중하여 다음날 바로 철수명령이 내려졌다.

요즘 龜尾(구미) 시민들은 계륵만큼이나 어려운 "검토하겠다"는 말을 놓고 해석이 구구하다. 지난 3월 착공한 삼성전자 구미기술센터가 사실상 공사를 중단한 것으로 밝혀지자 지역 인사들이 확인 차 삼성전자를 방문했는데 윤종용 부회장이 이 같은 답변을 한 것. 윤 부회장은 공사 재개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는데 사실상 모호한 표현이 된 것이다.

일본어를 통역할 때 가장 곤란한 것이 檢討(검토)라는 단어라고 한다. 한자로는 우리와 똑같이 쓰는데 일본인들이 "검토하겠다"는 말은 정중한 거절의 표시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네 의미는 다르다. 잘되는 쪽으로 고려해볼 테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액면 그대로 통역했다간 정반대 의미가 된다.

구미는 지금 삼성전자에 목을 매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도 최근 이익이 떨어지면서 내부적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등 신동력 찾기에 바빠 앞뒤 가릴 계제가 아니다. 또 대기업인 만큼 '기업 논리'로만 문제를 풀 수도 없는 법. '지역 사랑'이라는 인간적인 변수가 버티고 있으니 속내를 확 털어놓는 답변도 할 수 없어 이래저래 구미시와 삼성전자는 서로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대기업 CEO의 "검토하겠다"는 의미는 진정 무엇일까.

윤주태 중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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