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송사 소나무
유해자
바람이 까치발로 지나가는 옛 절터
새로 짓는 법당 앞에 산벚꽃 자지러져
합장한 적송 두 그루 앞이마가 후끈하다
제비꽃 돌배꽃이 피었다 지는 사이
망초대 키를 세웠다 제풀에 주저앉고
달빛에 솔잎 벼리어 새파랗게 날이 선다
허다한 생각들이 솔방울로 맺히는가
밤마다 굳은 각질 속살로 밀어내며
찐득한 그리움 안고 솔씨 하나 떨군다
지리산을 에돌다 벽송사에 들렀습니다. 함양 마천의 칠선계곡 들목에서 왼쪽 등성이를 치달아 오른 산턱에 슬쩍 걸터앉은 절집. 법당 뒤쪽에 흔히 미인송, 도인송으로 부르는 두 그루 소나무가 서 있는데, '벽송사 소나무'라면 필시 그 나무를 이름일 겝니다.
법당 앞에 산벚꽃이 자지러지고, 제비꽃 돌배꽃이 다투어 피는 봄날이 시의 배경입니다. 그런 꽃들과 달빛에 벼린 솔잎의 관계에서 시인은 자연의 감응을 포착합니다. 그렇게 言外(언외)의 의미를 따라가려는 심산인 게지요.
허다한 생각들이 솔방울로 맺힙니다. 속살이 밀어내는 각질은 보굿이 되고, 찐득하니 게워낸 송진 속엔 생명의 솔씨가 자랍니다. 사물에 대한 풋풋한 감각이 문맥에 생동감을 불어넣지요. 자연은 자연이되 그냥 통념적인 자연이 아니고 환한 심상으로 꿰뚫는 자연입니다.
박기섭(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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