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사람] 최두혁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입력 2007-08-24 08:00:34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그곳은 대구시립무용단에게 허허벌판과 같은 곳이었다. 고정 관객은커녕 '대구'라는 도시조차 알지 못하는 수십만 명의 관광객들에게 이름을 알리는 데에도 버거웠으니 말이다.

지난 5일부터 10일까지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해 공연 '꼭두각시(Puppet)'를 선보인 대구시립무용단은 프리뷰 공연을 포함해 총 8회의 공연을 펼쳤다. 200석 규모의 공연장에서 기간 동안 공연을 관람한 관객은 약 1천여 명.

첫 공연에선 관객이 50여 명에 불과했지만 공연이 막바지로 흐르면서 객석은 꽉 찼다. 에든버러 주민은 "한국과 스코틀랜드의 억압받은 역사가 비슷해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면서 "올해 내가 본 공연 중 최고"라고 평했고, 공연을 본 한 한국 교민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고까지 말했다. 허허벌판에서 발가벗고 정면대결한 결과였다.

올해 대구시립무용단을 에든버러에 이끌고 간 최두혁(42) 예술감독은 그저 '우리가 잘하고 있나.'를 가늠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30여 명의 무용수와 함께 에든버러행을 택했다. "대구시립무용단을 알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국제적인 잣대 위에 우리를 올려놓고 싶었습니다. "

의도는 적중했다. 국공립무용단이라는 이름도, 인맥도 없이 낯선 이국에서 오로지 '작품'으로만 승부해야 했기 때문이다. 무용단원들은 매회 공연 때마다 소극장에서 관객들과 호흡하며 그들의 반응을 살피고 때로는 즉흥적으로 덧붙이기도 했다. 이는 고스란히 관객의 웃음과 박수로 돌아왔다.

하지만 시행착오도 많았다. 공연하는 극장이 페스티벌의 중심부에서 떨어져 있고 공연시스템이 우리와 달랐다. 또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무용수들의 몫이었다. 포스터를 붙이고 팸플릿을 나눠주며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높여 공연을 직접 홍보해야 했다.

"첫날 공연 시작 전, '한 명도 안 올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무용하면서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죠. 그런데 50여 명의 관객이 찾아왔을 때, 정말 관객 한 명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홍보전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더해 외국 관광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무대 의상인 한복을 입고 포즈를 취하면 외국 관객들이 몰려와 사진을 찍어댔고, 공연의 하이라이트를 길거리 공연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흔히 지역 무용공연에는 가족·제자·친구들이 객석의 상당 부분을 채우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발가벗고 무대에 서 본 적이 있었던가. 절박하게 관객을 생각한 적이 있었던가. 자칫 잘못하면 텅 빈 객석을 바라봐야 할지도 모를 상황에서 떠오른 반성이다.

"한국에선 형식적 관객수를 중시했는데 여긴 아니예요. 같이 호흡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는 자체로 힘을 얻고 에너지를 받을 수 있어요. 2천여 개 공연단체가 경쟁이 아니라 저마다 즐기면서 공연하는 것도 인상 깊었고요."

30여 명의 무용단원은 물론 반주를 맡아준 10명의 퓨전재즈그룹 J.O.K도 큰 힘이 됐다. 10명이나 되는 뮤지션들이 전통음악에 재즈를 얹어 라이브 음악을 들려주는 공연은 전체 공연에서도 드물었던 까닭이다. 공연은 후반 들어서 점점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막바지 공연엔 객석이 꽉 들어차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기립박수를 받고 눈물 흘린 단원도 있었어요. 무대 위에 서는 사람들은 자신의 열정에 뜨겁게 호응해주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관객들은 표현을 잘 안 해요. 그 점이 늘 아쉽죠." 에든버러행은 그에게, 그리고 대구시립무용단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세계 수준에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입니다. 또 마케팅 전략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어요. 다음에 해외공연을 한다면 현지에 맞는 철저한 준비로 관객몰이에 성공할 전략도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관객 한 명의 소중함을 깨달았어요."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 이상철기자 find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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