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의 이름은 조선왕조실록에 3천 번이 넘게 거론된다. 학문적으로도 그렇지만 정치적으로 크나큰 영향을 끼쳐 일찌감치 大老(대로)로 불렸다. 임금의 죄를 받아 죽었지만 후일 성균관 문묘에 배향되는, 유학자 최대의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그를 죽음으로 내몬 죄목은 '죄인들의 수괴'였지만 그를 따른 문인들과 노론에게는 존경할 師表(사표)였다.
그에 대한 극단의 찬사와 비난은 당대에만이 아니었다. 노론의 재집권이후 정조 임금은 국비를 들여 그의 문집 송자대전을 발간했다. 姓(성)뒤에 子(자)자를 붙여 성인의 대접을 했다. 그러나 그를 비난하고 저주한 남인과 소론에게 그는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에 대한 평가는 지금껏 엇갈린다.
송시열은 나이 83세에 사약을 받았다. 장희빈 소생의 왕자가 원자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告廟(고묘)까지 끝난 일을 반대한 것이 죽음에 이른 직접적 원인이지만 그를 죽이지 않고서는 노론을 완전히 꺾을 수 없다고 여긴 당시 임금 숙종과 그를 반대한 남인들의 뜻이었다. 소현세자의 죽음으로 왕위를 이은 효종의 자손들에게 그와 그의 당파를 '효종의 죄인'으로 만들고자 했던 게 바로 예송논쟁이었다.
인조반정 이후 숙종을 지나 영정조 시대를 이어오는 동안 조선의 정치사는 보복이 끝없이 이어졌다. 나와 다른 뜻과 생각은 죽이고야 마는 시대였다. 당연히 화해는 기대할 수 없었고 독단만이 넘쳐났다. 독단의 결과는 역사의 불행으로 이어졌다.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기 앞서 감정적이고 극단적인 평가가 앞선다. 지역감정이 한몫을 하기도 했다. 지도자와 도적이라는 평가가 상존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극단적 평가를 받는 대표적 인물이다. 정치발전에 대한 그의 공과 과를 놓고 지지와 비판이 엇갈린다.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의 상영을 두고 합천군이 시끄럽다고 한다. '일해공원'에 반대하는 단체와 '전두환을 사랑하는 모임'의 충돌이 우려된다고 한다. 5공의 핵심 인물들은 그들의 과거에 대해 '징검다리 역할'을 강조한다. 혼란의 상황에서 불가피한 역사적 선택이었다고 한다. 극과 극은 화해의 악수를 외면하는 극한에 있어 서로 통하지만 과연 역사 발전에 있어 바람직한 선택일까.
서영관 북부본부장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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