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보면 주인공을 맡은 톰 크루즈가 공간에 투영된 가상 스크린에다 손을 휘저어 컴퓨터에 명령을 내리는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거리에서는 행인들을 인식하고 그 사람에 맞는 광고를 보여주는 쌍방향 인터랙티브형 화면이 펼쳐진다.
이 장면들은 영화적인 상상만은 아니다. 지금은 기계를 쓰기 위해 사람들이 매뉴얼을 보고 사용법을 익혀야 하지만, 머잖은 장래에 기계가 사람에 맞게 사용법을 맞춰주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그 중심에는 '인간 중심의 인터페이스' 개념이 있다.
◆손을 휘저어 컴퓨터를 작동한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톰 크루즈가 컴퓨터를 다루는 기술을 '제스처 인터페이스'(Gesture Interface)라고 한다. '마이너 리포트' 속의 제스처 인터페이스는 과학자들의 자문을 거쳐 탄생했다. 영화에서 스티븐 스필버그의 과학기술고문 역할을 맡은 존 언더코플러는 오블롱 인더스트리(Oblong Industries)라는 회사를 설립했는데, 이 회사는 제스처 인터페이스 기술을 PC에 구현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오블롱 인더스트리는 사람 손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작동하는 운영체제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 운영체제는 손의 상하·좌우·전후 움직임에 반응하며 글러브 위에 장치된 목표물의 위치를 추적하는 카메라와 함께 작동한다. 존 언더코플러는 "컴퓨터 작업 환경에서 이제 마우스와 결별할 때"라고 역설한다.
지난해 11월 고양시에서 열린 '2006 차세대 컴퓨팅산업 전시회'에서는 지능형 라이프 로그(Life-Log)라는 기술이 선보여 이목을 끌었다.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일상과 영감을 컴퓨터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볼 수 있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공원에서 산책하는 사람들을 보며 아이디어를 얻은 디자이너가 이 장면을 헤드셋 카메라에 찍고 특수 장갑을 낀 손으로 공중에 그린다. 헤드셋 카메라는 손가락 끝의 궤적을 통해 입수된 정보를 휴대용 저장장치에 기록한다.
◆생각으로 컴퓨터를 움직인다
문명은 인간의 게으름 때문에 생겼는지도 모른다. 손을 젓는 것조차 귀찮은 이가 있다면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작동하는 기술이 아쉬울 듯하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한국계 컴퓨터 게임업체 '뉴로스카이'(Neurosky)는 뇌 전위 신호를 이용해 장난감을 원격 조정하는 기술을 지난 4월 선보였다.
이 회사가 개발한 제품은 '바이오 피드백' 기술을 이용한다. 사용자의 이마에 붙은 센서가 뇌파·안구 움직임 등 각종 생체 신호를 수집한 뒤 무선을 통해 신호를 보내 장난감 자동차와 로봇을 조정한다.
이 회사의 '다스 베이더'라는 게임도 흥미롭다. 영화 '스타 워즈'에 나오는 다스 베이더 복장을 한 뒤 집중력을 높이면 마스크 내부에 있는 센서가 이를 읽고 무선을 통해 손에 든 광선검에 불을 켠다. 뇌파가 전력까지 공급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뇌파가 광선검 안의 전원을 켜는 것인데, 게이머의 집중력이 높을수록 광선검은 더 환해진다. 이 기술을 게임에 응용할 경우 게이머는 생각과 집중력으로 게임 캐릭터를 통제할 수 있게 된다.
뇌파를 비롯해 심전도·땀샘 변화 등 생체 신호 즉 바이오 피드백을 이용해 게임을 즐기는 시대가 곧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국내의 벤처기업인 (주)락싸가 개발하고 있는 자동차 경주 게임에서는 키보드나 조이스틱이 아니라, 게이머의 이마와 양쪽 귀에 붙은 전극 센서로 자동차를 조종한다. 게이머가 무언가에 집중할 수록 자동차의 속도는 높아지고 아주 높아지면 자동차가 날아가기까지 한다.
◆인간에 봉사하는 인터페이스
아일랜드의 더블린 미디어랩이라는 회사는 우울증 및 스트레스 치료를 위해 '릴랙스 투 윈'(Relax to win)이라는 게임을 발표했다. 게이머의 손가락에 달린 장치가 맥박과 전류를 분석하는데, 긴장이 풀리고 맥박이 낮아질수록 게임 속의 공룡을 잘 조작할 수 있는 게임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개발 중인 볼링핀 쓰러뜨리기 게임은 두 사람이 할 수 있다. 집중을 잘하는 사람이 상대방의 볼링핀을 쓰러뜨릴 수 있다.
생체 신호를 활용하는 인터페이스는 현재 많이 사용되고 있는 인터페이스와 달리 학습 및 훈련 과정이 필요없다. 따라서 고연령층이나 장애인 등 기기 조작에 어려움을 느끼는 정보 소외 계층에게도 편리한 인간 중심적인 인터페이스를 제공할 수 있다.
지난 4월 대구에는 장애인들을 위한 게임 공간으로 '해피 스페이스'가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손이 아닌 눈으로 특수 마우스를 조작하는 기기를 비롯해 특수 키보드·점자정보단말기 등 각종 보조공학기기를 이용해 장애인들이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HD게임연구팀 홍윤광 연구원은 '생체 정보와 게임 기술의 만남 바이오 피드백 게임'이라는 논문을 통해 '바이오 피드백 기술을 통해 게임은 단순한 조작만으로 제어되는 사이버 공간이 아니라 자신의 실제 생리학적인 상태를 기반으로 한 감성이 교류되는 정서적인 세계로 변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키워드
인터페이스(Interface)
서로 다르면 그냥은 통할 수 없다. 다른 두 시스템이나 장치·소프트웨어 따위를 이어주려면 매개장치가 필요한데 그게 바로 인터페이스다. 원래 인터페이스는 2개의 다른 세계가 접하는 곳에서 발생하는 면(面)을 가리키는 화학용어다. 요즘에는 서로 관계가 없는 객체들이 상호 작용을 하기 위해 사용하는 장치·방법·약속 등을 뜻하는 말로 더 많이 쓰인다.
엄밀히 말하자면 언어와 손짓·몸짓도 인터페이스다. 외국사람과 대화를 위해 통역인을 고용했다면 그 역시 인터페이스. 리모컨도 사람과 가전 제품을 연결하는 인터페이스에 속한다.
인터페이스는 컴퓨터 분야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용어다. 인터페이스는 주로 키보드나 마우스·모니터와 같은 입·출력 장치를 뜻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다. 도스(DOS) 명령어도 인터페이스이고 마우스를 통해 컴퓨터를 조작하는 작업 환경 즉 GUI도 인터페이스다. GUI는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raphical User Interface)의 약자로 사용자가 그래픽을 통해 컴퓨터와 정보를 교환하는 작업 환경을 일컫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 '윈도' 시리즈의 GUI와 애플 매킨토시 GUI가 대표적인 사례다.
바이오 피드백(Bio Feedback)
뇌·심장 박동·체온 등의 자율신경계는 의지로 조절할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의 생체 신호를 스스로에게 피드백해 주면 어느 정도 자율신경계를 조절할 수 있다. 몸에 생물학적 활성도를 측정하는 센서를 부착하고 혈압·피부 전기저항·근육긴장도 등의 수치를 그래프나 음향, 불빛 깜빡임 등 신호로 만들어 보여주면서 사람이 이를 조절하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이를 바이오 피드백이라고 한다.
바이오 피드백 연구는 1950년대 임상치료 분야에서 시작됐지만 요즘 들어서 게임이나 컴퓨터 조작 등으로 활용 범위를 넓혀나가고 있다. 뇌파나 심전도, 땀샘 변화 등을 전기적 신호로 바꿔 게임기나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바이오 피드백은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작동하고 게임을 즐기는 궁극적인 인간 중심의 인터페이스를 실현하는 핵심 기술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해용기자 kimh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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