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경선, 사생결단 '예선'…모두 상처투성이

입력 2007-08-20 10:04:30

한나라당 경선이 19일 투표와 20일 당선자 발표로 막을 내렸다. 19일 오후 대구시 선관위 직원들이 한나라당 경선 투표함을 서울로 이송하기 위해 차량에 싣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한나라당 경선이 19일 투표와 20일 당선자 발표로 막을 내렸다. 19일 오후 대구시 선관위 직원들이 한나라당 경선 투표함을 서울로 이송하기 위해 차량에 싣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20일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선출됨에 따라 1년여 동안 벌인 대접전이 끝났다. 이번 경선은 야당사에서 전례가 드물 정도로 치열했다. 네 후보 중 '빅2'인 이명박·박근혜 두 후보 간의 상호 비방과 네거티브는 금도를 넘어 당 분열이 거론될 정도였다. 사상 처음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위탁받아 투·개표를 관리한 이번 경선을 정리하고, 이제부터 대선 본선으로 넘어가는 한나라당호의 운명을 전망해본다.-편집자주

◆다시는 이런 경선 할 사람 없을 것

박 후보의 캠프 상황실장을 맡았던 최경환 의원은 "과거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이 죽은 경선이었다면 이번은 분명히 살아있는 경선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런 평가는 정치권 전반에서 일치한다. 문제는 경선 승리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한나라당이 겪은 내홍이 만만찮다는 것. 최 의원은 그래서 "다시는 이런 경선은 못하겠다."고 넌더리를 쳤다.

국민을 실망시킨 가장 큰 문제점이 경선 기간 내내 계속된 후보 간 상호비방전이다. 경선 이후 본선은 온데간데없이 경선에서 이미 후보들의 흠집을 낼 만치 내버리는 우를 범해 버린 것이다. 대선 후보로 선출된 후보가 상처투성이로 본선 게임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 특히 특정 후보 '필패론'이 제기되고, 고소·고발전으로까지 치달아 국민에게 감동을 주기는커녕 한나라당, 나아가 정치권 전체에 실망감을 갖게 한 상황을 만든 게 아니냐는 우려가 경선 승자와 패자 진영 모두에서 나오고 있다.

◆깊어가는 경선 후유증

경선 과정의 치열한 경쟁에서 당 분열상을 여지없이 노출했다. 원인은 의원 줄세우기. 유력 대선주자에 대한 의원들의 줄서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번 경선에서는 사생결단식이었다. 12월 대선에 이어 4개월여 뒤인 내년 4월에 총선이 치러지기 때문에 줄을 서는 사람이나 세우는 사람 모두 정치적 운명을 모두 걸다시피했다.

지역의원들의 한결같은 푸념에서도 적잖은 경선 후유증을 예상할 수 있다. 박 후보를 지지한 구미의 김태환 의원의 경우 이 후보를 지지한 정종복(경주) 의원과 평소 각별한 사이지만 경선 과정에서는"의원회관 복도에서 만나도 서먹서먹했다."고 했다. 박 후보의 최측근인 유승민 의원은 의원회관에 들를 때면 이 후보 측 인사들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지하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곧바로 사무실로 직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신이 지지하지 않은 후보가 경선에서 이기면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발언하는 의원들도 나왔다. 그만큼 경선전에 몰입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경선이 게임의 룰을 벗어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나아가 경선 이후 한나라당 봉합이 쉽지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경선 게임의 룰과 지도력 부재

이른바 '빅2' 진영이 감정싸움으로까지 치달은 것은 제대로 된 게임룰과 당 지도부의 지도력 부재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특히 지난해 당 혁신위원회 안에 따라 당권과 대권이 분리된 한나라당은 유력 대선주자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없었다. 지난해 7·11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지도부가 당을 일사불란하게 이끌기보다 경선관리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제도적 맹점이 있었던 것. 과거 '제왕적 총재'로 불렸던 이회창 총재의 당권·대권 독점 폐해를 시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당권·대권 분리안이 오히려 지도부의 족쇄가 된 셈이다.

이 후보 비서실장인 주호영 의원은 당 지도부에 대한 불만이 대단했다. 주 의원은 "후보 검증을 위해 당내에 검증위원회를 만들었으면 검증위를 상시 가동해 문제가 있으면 사전에 걸러주든지 해야되는데 이게 안 됐다."며 "네거티브의 방치는 당 지도부가 심하게 비판받아야 할 대목"이라고 주장했다.

후보가 정해지고 난 뒤 경선룰을 정한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미국의 경우 후보가 거론조차 되지 않는 대선 2, 3년 전에 경선룰을 만들기 때문에 경선룰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경선흥행은 성과

경선흥행의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는 지난 2002년 당시 민주당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부상이었다. 노 후보는 제주와 울산을 거쳐 세 번째 치른 광주지역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함으로써 대세를 결정지었다.

이번 한나라당 경선 역시 언론과 여론의 관심을 집중시켰다는 점에서 일단 흥행은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과거 '수구 보수' '부자당' '대세론' 등의 이미지로 좀처럼 정치적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던 한나라당이 '빅2'의 치열한 경쟁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붙잡았다. 경선을 통해 역동적이고 처절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나약한 한나라당이 아니라 강한 한나라당이란 이미지를 심는 데 성공했고, 정책에 대한 치열한 공방으로 수권 정당이란 모습을 국민에게 인식시켰다는 평가다.

이상곤기자 lees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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