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크라테스는 의사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면 누구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참된 의사가 됨을 다짐한다. 나 역시 그랬었다.
그러나, 솔직히 히포크라테스가 왜 중요한지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우리 몸은 물, 불, 공기, 흙으로 되었다. 병은 이런 물질의 조화가 깨어질 때 온다. 치료는 자연적인 치유과정에 맡겨야 된다는 질병관은 속으로 웃음이 나왔고 나를 따분하게 했다.
하지만 현대의학은 나를 신나게 했다. 나날이 발전하는 첨단 기계는 몸 구석구석을 확인하고 병을 찾아내었다. 특히 전공이 외과인 나는 더욱 신이 났다. 눈에 보이는 병변을 수술하면 병은 사라지는 것 같았다. 미사일같이 표적만 찾아가서 효과를 나타내는 약을 보면 세상의 모든 병은 이제 치료되는 것 같았다.
환자들이 내가 권하는 진단과 치료를 거부하고 다른 대안을 얘기하면 화부터 먼저 냈다. 다른 것은 절대, 절대로 안 된다고 단호하게 얘기했다. 그래도 나의 의견을 거부하면 의사의 명예를 걸고 제대로 된 경우를 못 봤다고 악담을 했다. 대부분 환자들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나중에 도움을 청하러 왔지만 이제 해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냉정하게 돌려보냈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구토가 생기는 항암제나 암의 다른 치료 과정이 너무 힘들다고 얘기하면 중요한 것은 생존율이라고 치료 데이터를 코앞에 내밀었다.
하지만 의사로서 경험이 쌓이자 병에 대한 많은 의문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병의 대부분이 책에서 배운 대로 진단되고 치료가 되었지만 공식에 벗어나는 경우도 있었다. 암이 전신에 퍼져 분명 몇 개월 못 산다고 추정했지만 멀쩡한 사람도 있었고 너무나 작은 암이라 괜찮다고 얘기했으나 몇 개월 만에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많은 것이 혼란스러웠다. 한때 유행한 대체의학도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황당한 주장이 너무 많았고 환자들에게 경제적, 정신적인 고통을 주는 경우가 더 많았다.
병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끊임없이 생각했다. 결론은 분석적인 현대의학도 맞고 균형적인 보완의학도 모두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병에 대해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을 해야 하되 최소한 신체에 해만 입히지 말자는 결론에도 도달했다. 그러자 옛날 의사들의 병에 대한 접근 방법이 눈에 들어왔다. 히포크라테스의 접근 방법도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 한국·터키 수교 50주년 기념 방문이 있었다. 방문 중에 인근에 히포크라테스가 태어났고 활동한 세계 최초의 종합병원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만사를 제치고 방문을 추진했다. 아스클레피온 언덕에 서기 4세기 전에 세워진 병원은 넓은 터에 유적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병원 입구는 넓고 긴 대리석 길로 되었으며 맨발로 걸어 들어간다. 치료의 시작이다. 뜰의 샘물에서 몸을 씻고 80m 돌 터널로 들어간다. 돌 터널 옆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졸졸 들리고 지붕으로 빛이 들어오는 구멍이 있고 의사들이 위로의 소리를 신비롭게 들려준다. 일광욕을 하는 테라스도 있고 연극 등의 공연을 하는 수백 명이 들어설 규모의 원형 극장이 있어서 웃음 치료를 병행하게 된다. 자연치료와 심리 치료를 병행하는 병원인 셈이다.
현대적인 의미로 보아도 훌륭한 접근 방법이었다. 자연, 심리 요법에 이만한 장소와 프로그램을 가진 접근 방법은 현대의 우리가 배울 정도로 체계가 있었다.
같이 간 의사 3명은 서둘러 선서 준비를 했다. 이제는 제대로 의미를 아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싶었다.
병만 보지 말고 사람도 보자. 치료도 한 가지만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약이나 수술만이 치료는 아니다. 기다리는 것도 치료의 한 방법이다. 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새로운 의사의 길을 가자고 마음 깊이 맹세를 했다.
임재양 외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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