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아내·남편으로 산다는 것은?

입력 2007-08-18 07:16:59

문학계간지 '시인세계' 가을호 특집

시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고달프다. 어떤 이는 "천형(天刑)과도 같은 것이다."고 했다. 같은 사물에서 명징한 시어를 낚아 올리는 일은 고통의 연속이다. 시인은 그렇다 치고, 그럼 시인의 배우자는 어떨까?

문학계간지 '시인세계'(발행인 김종해) 가을호 특집기사로 '시인의 아내, 시인의 남편'을 담았다. 시인을 남편으로 둔 아내, 시인을 아내로 둔 남편의 '험담'과 함께 마음 깊숙이 우러나는 추억과 사랑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이형기 시인의 아내 조은숙 씨는 '어리석은 자여 그대 이름은 시인'이란 글에서 "시인이란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는 자유인이지만 세상살이에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린다.

"이사 갈 때도 책 한 권 싸거나 풀어본 적이 없었다."며 "이사한 다음날도 그는 등산을 하거나 밖에 나가 바둑을 두곤 했다."고 적고 있다.

정진규 시인의 아내 변영림 씨는 "당신이 내 아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등등의 폭언에 자신을 쥐 잡듯 하는 남편 때문에 속상했던 기억도 대담하게(?) 털어놓았다. 결혼 후 명창 김소희의 국악공연장에서 피곤해 잠시 잔 것이 죄(?)라면 죄. "남편의 시를 잘 읽지 않는다. 이해 못하는 부분도 많았고, 그 가치를 잘 모르기도 했다."며 그러나 "시선집을 내고 좋아하는 남편 모습을 보고 다시 읽었더니 어찌 이리 구절마다 가슴에 와 닿는지…. 이것이 세월이고 함께 살아온 연륜인가 보다. 고맙다."라고 쓰고 있다.

지난 1993년 6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천상병 시인의 아내 목순옥 씨는 남편과의 인연을 '소꿉장난 같은 날'이라고 회상한다. '일곱 살짜리' 시인과의 생활은 기쁨과 슬픔이 함께하였지만 늘 순진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부모님이나 오빠한테도 '기집애' 소리 한번 듣지 않고 자란 문 씨를 남편은 '문디 가시나'라고 불렀다. 간경화증으로 사경을 헤맬 때 술을 찾는 그를 달래면 그때마다 "문디 가시나"라며 투정을 부렸다. "처음에는 울컥 화를 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문디 가시나'가 애칭이라며 계속 그렇게 불러대곤 했습니다. 그 높이가 화가 날 때는 높아지고 애칭이라고 할 때는 낮게 말하곤 했습니다."

"어쩌다 말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아내야, 사람은 웃어야 된다. 웃어야 복이 온다.'라며 깔깔 웃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그런 말도 들을 수 없습니다."라며 그리워했다.

그러면 시인을 아내로 둔 남편들은 어떨까.

김은자 시인의 남편 오탁번 시인은 "결혼 전 아내는 영화 '닥터 지바고'의 주인공 라라의 이미지로 착하고 모범생이었다."며 그러나 결혼 후 "내가 생각하던 여자의 범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생판 판이한 성격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이외 노향림·홍신선 시인, 이선영·맹문재 시인의 글도 담았다. 또 '세계 문학사 속의 시인 부부' 영국의 테드 휴즈·실비아 플라스와 로버트 브라우닝·배릿 브라우닝, 중국의 육유·당완 등 역사적인 '시인 커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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