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한국인의 자화상은?

입력 2007-08-17 09:01:34

우리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오늘로 아프간 피랍사태가 한 달째를 맞았다. 그간 수많은 증오와 갈등, 억측을 지켜보면서 우리의 자화상은 과연 어떠한가라는 생각을 해봤다. 서글픔 그 자체가 아니었던가.

피랍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인터넷에는 수많은 댓글이 올라왔다. 기독교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 생명에 대한 경시, 피랍자와 가족에 대한 욕설…. 인터넷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유서 쓰고 갔으니 죽어라." "내가 낸 세금을 한푼도 쓰지 마라." "정부는 그들을 내버려두라." 처음에는 일부 철없는(?) 누리꾼들의 장난인 줄 알았다. 몇 날 며칠이 가고, 두 사람이 목숨을 잃었을 때도 증오와 욕설의 도배질은 숙지지 않았다. 젊은이뿐만 아니라 30, 40대들도 그 광기의 대열에 대거 합류한 것을 확인했을 때는 아연실색했다. 생명을 앞에 두고 그들을 단죄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을 잘 알 법한데도….

피랍자 가족과 친지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누리꾼들은 대체 누구일까? 그들이 이렇게 지독한 증오와 적대감에 사로잡혀 있는 이유가 대체 뭘까?(피랍자들의 아프간행 과정이나 기독교의 선교방식에 동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을 살려 데려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누리꾼들도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우리의 평범한 이웃이다. 자신만의 세계에 매몰돼 있는 폐인이 아니라 함께 웃고 떠들고 가족의 가치와 사회의식을 공유한 이들이다. 그런데도 어쩌면 이웃으로 살 수도 있었고, 한 교실에서 나란히 공부할 수도 있었던 피랍자들을 '죽게 내버려 두라.'고 한다. 아무리 특정 종교가 밉다고 하더라도 뭐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악플러들은 사회규범과 민족의식으로 철저하게 무장한 애국자(?)일 수도 있다. 튀는 행동을 일삼는 일부 종교인을 우리 공동체에서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는 의식의 발로쯤으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그 방향성에 엄청난 오류가 숨어있다.

그 오류가 서로 죽이고 미워하는 동족상잔 현대사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한다면 틀린 말일까. 상대방의 사고나 이념, 행동방식을 전혀 용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바로 그것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쓴 '한국 1950 전쟁과 평화'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오래된 공통의 역사와 문화, 핏줄을 갖는 동족이었기 때문에 그 동족성을 파괴한 이들에 대한 증오와 살의가 더 컸을지 모른다. 우익들이 사고하길 공산주의자들만 사라지면 민족일체성, 동일민족성을 회복하고 민족의 평화와 행복은 보장되는 것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은 정반대로 사고하고 행동했다."

6·25때도 그랬고 80년 광주에서도 그러했다. 요즘에도 진보와 보수로 갈려 상대를 죽일듯 싸우는 모습에서 그 편가르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배려'나 '타협'이란 말은 그 어디에도 없고 상대는 오로지 타도의 대상일 뿐이다.

우리는 할아버지, 아버지에게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상대를 '뿌리 뽑고 박멸하려는' 의식과 사고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는지 모른다. 그것은 사회문화적 역사적 환경에서 얻은 '유전형질'일 것이다. 타인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개방된 사회에서 살아가기에 부적합한 사람이 주위에 너무나 많다는 말이 된다.

피랍사태에 역사문제를 갖다 붙인 것은 논리의 비약일 수 있겠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가 낡아빠진 의식에 매여 있다면 그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소설가 이외수의 글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맺는다. "인간이 길을 만들기 이전에는 모든 공간이 길이었다./ 인간은 길을 만들고 자신들이 만든 길에 길들여져 있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들이 만든 길이 아니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박병선 기획탐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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