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TV의 변신은 계속되고 있다. 과거 홈쇼핑 채널과 드라마 재방송, 뮤직드라마가 전부였던데 비해 요즘은 자체제작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는 것. 공중파에서는 하지 못하는 다양한 시도들을 계속하면서 틈새시장을 개척하려는 노력도 상당하다.
과감한 편성도 눈에 띈다. 미드(미국드라마) 열풍에 힘입어 미드 종일 편성을 하기도 하고, 얼마전 방송됐던 커피프린스의 경우 9시간 연속방송을 통해 순간시청률 13%라는 케이블 채널로서는 놀라운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적잖다. 공중파보다는 '공정성'과 '도덕성'이라는 잣대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을 활용, 노골적인 묘사와 선정적인 주제로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드는 방송도 꽤나 많다.
변화하는 케이블, 과연 볼거리의 다양화라는 측면에서 축복인가? 아니면 저질 프로그램의 양산하는 재앙의 시작인가?
▲이색지대를 개척하라
지난 5일 '시즌 1'의 막을 내린 '막돼먹은 영애씨'. 이 드라마는 '정말 드라마 맞아?'라는 말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게 만드는 새로운 시도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6mm카메라로 담아낸 실험적인 영상에다 '인간극장'을 연상시키는 나레이션, 장면이 바뀔때마다 장소와 시간, 촬영기법까지 자막으로 더해지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리얼리티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정형화된 드라마의 틀을 깬 형식으로 처음에는 비판도 많았지만 "독특한 중독성이 있다"는 것이 이 드라마를 지켜본 시청자들의 반응. 뻔한 사랑타령과 불륜으로 점철된 우리 드라마의 틀을 벗어나 무리한 갈등구조를 피하고 일상의 이야기만을 담아냄으로써 '드라마틱한 요소가 부족하다'는 평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우리나라 드라마 역사에 없던 새로운 시도임에는 분명하다.
지난해 tvN이 개국 기념으로 준비했던 성인 코믹물 '하이에나'와 OCN의 16부작 미니시리즈 '썸데이' 등은 1% 미만의 시청률에 머물렀지만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YTN의 '돌발영상'도 케이블에서만 볼 수 있는 묘미 중 하나다. 취재중 발생하는 좌충우돌 현장의 모습을 여과없이 그대로 보여줘 시청자들로부터 '영상의 촌철살인'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연예가의 떠도는 이야기들을 파헤치는 tvN의 '약간 위험한 취재' 역시 새롭다. 가끔 선정적인 주제를 선택하기도 하지만 연예가에 떠도는 이야기들에 카메라를 들이대 그 실체를 파헤쳐본다는 취지는 신선하다는 반응. 얼마전에는 말로만 떠돌던 '자유로 귀신'의 실체를 찾아 퇴마사를 동원하기도 해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저비용, 고효율의 토크쇼 전성시대
토크쇼는 케이블 방송사(PP)들이 가장 선호하는 형식이다. 저렴한 비용으로 고효율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공중파 심야 시간대 효자 프로그램으로 각광받는 토크쇼가 케이블 오락 채널들의 주력 프로그램으로 떠오르고 있다. MBC 드라마넷의 '삼색녀 토크쇼', 스토리 온의 '박철 쇼'와 '스토리 쇼, 이 사람을 고발합니다', tvN 의 'Something new', YTN스타의 '서세원의 生쇼', XTM '도와주십SHOW' 등 그 숫자를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다.
공중파 토크쇼보다 주제도 다양해 보는 재미를 더했다. 연예인들의 입담과 사생활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주에 대한 새로운 트렌드 소개, 부부생활에 대한 다양한 정보, 시사문제 등으로 그 영역을 확장했다. 스타 게스트 섭외가 힘든 대신 표현의 자율성을 최대한 살려 보겠다는 취지다.
해외에서 제작된 '오프라 윈프리 쇼', '래리 킹 라이브', '타이라 쇼' 등도 케이블에서 인기다. 국내 방송에 비해 훨씬 다양한 주제와 출연자를 대상으로 이뤄지는데다 거식증, 약물 중독, 성 전환 등 사회 이슈부터 개인적인 사안까지 폭넓은 주제를 다룸으로써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하지만 토크쇼 역시 케이블의 고질적 병폐로 드러나고 있는 '선정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스토리쇼, 이 사람을 고발합니다'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성생활을 요구하는 남편을 고발하는 아내를 등장시켜 논란의 도마에 올랐으며, 폐지된 tvN 는 연예인들이 자신의 '첫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생 날것? 리얼리티쇼
케이블 TV에서 방송된 프로그램 중 가장 문제작으로 손꼽히는 것은 tvN '독고영재의 현장르포 스캔들'이다. 연인의 외도를 의심하는 의뢰인이 출연하고, 카메라는 그 현장을 추적해 증거를 포착하는 형태. 미국의 '현장고발 치터스'의 포맷을 그대로 베껴온 것이다.
시청자들은 마치 이 장면들이 생생한 현장인것처럼 느끼지만 사실은 '진짜같은 가짜'일 뿐이다. 이런 장르를 '페이크 다큐멘터리'라고 부른다. 자극적인 소재의 허구의 이야기를 실화인 것처럼 꾸며내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스캔들'은 '재연'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알리는 자막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리해 마치 실제 상황처럼 시청자들을 현혹하고 있다며 혹평을 받았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블 오락 프로그램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케이블 TV에서는 마의 고지로 불리는 시청률 3%선을 훌쩍 넘어서 4%대에 가볍게 도달했다. '욕하면서도 보는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 외에도 각종 리얼리티 쇼가 넘친다. '러브액션'은 서로 잘 모르는 남녀의 팔목에 수갑을 채워 이틀 동안 강제 연애를 하는 과정을 그내로 내보내고, 서바이벌 러브게임을 벌이는 '티비엔젤스', 개그우먼 김미려의 가수도전기를 담은 '미려는 괴로워' 역시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려 생생한 현장 전달을 전면에 내세운다.
▲ 문제, 문제들
대부분의 리얼리티쇼가 별 고민없이 미국의 포맷을 그대로 베껴온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현장고발 치터스'를 베낀 '독고영재의 현장르포 스캔들' 외에도 '조민기의 데미지'는 '제리 스프링거쇼'를 베꼈으며, '찰스의 스타일 업'은 '습격 거리변신'을, '하드코어 서바이벌 러쉬'는 '어메이징 레이스'를, '조정린의 아찔한 소개팅'은 '넥스트-마음에 들 때까지'를 표절한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선정성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생생한 현장감'을 근거로 욕설은 물론이고, 각종 낯뜨거운 광경까지도 여과없이 방송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키니 차림의 여성들이 각종 유혹의 몸짓으로 남성의 심장박동수를 높이는 '쓰리 벌떡' 코너는 아예 이름부터 남김없이 벗어버렸다. 프로그램마다 '최초', '끝까지 간다', '고감도' 등의 극단의 수식어를 보는 일도 이젠 지겨울 정도.
이 같은 현상에 대해 TBC 박영수 편성팀장은 "케이블 채널 탄생 13년 만에 자체제작 비중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반길만한 일이지만 너무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는 경향"이라며 "보통 가정에서는 공중파와 케이블의 구분없이 채널을 돌릴 수 있는 만큼 좀 더 강도높은 규제와, 제작진들의 공영성에 대한 의식 제고가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