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낮의 열기가 식지도 않은 채 밤이 찾아왔다. 진종일 달궈진 아스팔트가 쉽게 식을 리는 없을 거다. 돗자리를 들고 동네 공원을 찾았다. 돗자리를 깔고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 봤다. 불빛 탓인지 제일 초롱초롱한 견우, 직녀 별도 보이지 않았다.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 일도 없다. 그 옛날 모깃불을 피워놓고 할머니가 손부채질을 하며 옛날 이야기를 해주거나 라디오의 '전설따라 삼천리'로 한 여름밤을 보내던 시절을 따라가 보자.
농촌에서 여름밤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밤하늘의 별, 감자, 모기장, 옥수수와 함께 단연 모깃불에 대한 추억이다. 저녁상을 물리고 아버지는 슬금슬금 마당에 멍석을 깔고 모깃불을 피운다. 모깃불을 피우는 방법과 재료는 때에 따라 모두 달랐다.
가장 많이 사용한 방법이 낮에 풀을 베어두었다가 뜨거운 볕에 며칠씩 말려 둔다. 풀은 말라서 누렇게 변하는데 금방이라도 화그락거리며 불더미가 될 정도로 잘 말랐다. 풀에는 쑥이 들어있는 건 당연하다. 쑥이 해충을 쫓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모깃불을 피울 때 마른 풀을 땅위에 올려놓고 그 위에 금방 베어 둔 풀을 올려놓는다. 만일 마른 풀만 태우면 연기가 나지 않고 순식간에 다 타버리기 때문이다. 잘 타지 않는 풀을 올려서 연기를 많이 나게 하는 것이다.
허연 연기가 퍼지기 시작하면 연기와 함께 모기들이 따라간다고 믿었다.
그렇지 않으면 왕겨 한 더미 마당에 붇고 불을 지폈다. 어느 정도 알불이 생기면 그 위에다 소꼴로 베어온 풀을 얹는다. 매콤한 연기가 마당을 자욱하게 덮을 때면 할머니의 느린 부채질이 시원하기도 하지만 매운 연기를 없애주기도 했다.
농촌의 한 여름밤은 어떻게 보면 낭만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엄밀히 말해 모기와의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밤에는 아예 뒷간에 가는 걸 포기했다. 엉덩이를 들썩이며 볼썽사납게 볼일을 보는 일도 보통이 아니었다. 게다가 가축을 키우면 모기떼의 극성은 더할 수 없었다. 외양간은 모기떼 천국이었다.
암모기가 제 새끼들을 위해 피가 필요한데,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피가 가축들이다. 사람 피는 자기들의 필요한 양의 5% 정도만 섭취를 한다. 비록 5%지만 당시에 샤워 시설도 없던 환경에서 씻는 걸 죽기보다 싫어했던 아이들이 주요 목표물이 되기도 했다. 자고 일어나면 특히 얼굴에 물려서 얼굴이 퉁퉁 부어서 애 꼴이 영 말이 아니었다.
모깃불이 사그라지면 모기장을 치고 모기약으로 "후막기"라는 걸 썼다. 석유로 만든 액체가 든 병에 입으로 뿌리는 모기약을 흩뿌리고 잠을 청했다. 어떤 사람은 농약의 일종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모기를 죽이려고 농약을 뿌리고 잠을 자던 시절이었다.
비록 모기와의 전쟁터를 치러내는 여름밤이었지만 모깃불을 피울 때면 늘 기다리는 군것질이 있었다. 감자나, 옥수수, 고구마를 알불에 넣었다가 동치미 국물과 함께 먹는 맛에 군침이 삼켜졌다. 고구마의 노란 속살 하나가 멍석에 떨어지면 아까운 마음에 버릴 생각이 전혀 없다. 얼른 주워서 입으로 들어갔다.
토산물 먹는 게 지겨우면 사카린 태운 수박 화채나 우유 덩어리를 먹곤 했다. 우유덩어리는 학교에서 배급 받아온 우유가루를 밥 위에 쪄서 만든 것인데, 할머니가 읍내 성당에 가서 배급 받아온 우유가루도 있었다.
딱딱한 돌처럼 굳은 우유 덩어리를 한 번씩 갉아먹는 맛이 또 별미였다. 다섯 명의 형제 자매들도 모자라 동네 조무래기들까지 놀러온 날이면 우유 덩이가 한 바퀴 돌면 우유를 먹는 건지, 애들이 묻힌 침을 먹는 건지 껌껌한 밤에 구분이 안되었다. 만일 누구 하나 큰 입으로 우유 덩이가 뭉턱 잘려나가면 따가운 눈총에 주눅이 들어야 했다.
시골에서 한 여름밤의 추억을 느끼며 별똥별에 소원을 빌어보고 싶으면 농촌체험장을 찾으면 된다. 성주 가야산농촌체험마을(http://gayasan.invil.org)에서 모깃불체험이 가능하다.
밀양 평리녹색체험마을(www.pyungri.com)은 지난 2005년에 '올 여름 가볼만한 농촌체험마을' 10곳에 선정된 곳으로 유명하다. 대추나무로 유명한 평리마을은 노루,고라니,멧돼지 등 다양한 동물이 수시로 목격되는데다 마을 앞에 흐르는 고사천은 사계절 물이 맑아 쉬리,꺽지,버들치 등 1~2급수에 사는 어종이 살고 있다.
이 마을에서는 '한밤의 곤충 관찰' '민물고기'가재 잡기' '메뚜기 잡기' '옥수수따기'뿐만 아니라 논에서 기르는 메기를 잡는 '논메기 잡기'체험도 가능하다. 055-351-0572
김해 무척산마을(www.muchuk.co.kr)은 전통 한옥과 뒤주,원두막,방갈로 등으로 이뤄져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오리농법쌀 견학과 가지'고추 따기 체험이 가능하고 등산로를 따라 1시간 정도면 낙동강변 풍경과 야외수영장도 있어 피서지로도 그만이다. 055-338-2323.
김경호 (아이눈체험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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