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하반신 마비 나홀로 투병 김정인씨

입력 2007-08-15 09:30:55

"몸과 마음 성처뿐이지만 절망하지 않아요"

▲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후 휠체어에 의지하며 힘겹게 혼자 살고 있는 김정인 씨가 영남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후 휠체어에 의지하며 힘겹게 혼자 살고 있는 김정인 씨가 영남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교통사고, 하반신 마비, 이혼, 휠체어 신세, 입원, 욕창.' 지난 삶에서 행복의 흔적을 좀체 찾아볼 수 없는 여자. 하지만 그녀는 행복하다고 웃었고 만족한다고 읊조리며 얼굴을 붉혔다. 병균이 뼈까지 침범해 뼈를 도려내고 그 위에 살을 이어붙여 수십 군데를 꿰맸음에도, 욕창 때문에 바로 눕지도 못함에도 그녀는 자신이 '태권 V'이기 때문에 괜찮다며 슬픔이 가득 베인 농담까지 건넸다.

김정인(가명·55·여) 씨. 그녀의 삶에 고통이 침범한 것은 30대 후반이었던 1990년 8월 25일 새벽이었다. 공사판 일용직을 하며 생계를 꾸리던 남편에게 작은 힘이라도 되고자 식당 보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김 씨는 그날도 일을 마친 뒤 택시를 탔다. 아이들 아침밥을 챙기기 위해 마음이 바빴다고 했다. 대구 두류네거리에서 신호대기 중인 택시를 음주운전을 하던 승용차가 추돌했다. 정신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간 김 씨는 며칠 뒤 깨어났을 때 흉추 3번이 절단됐고 그 아랫부분이 모두 마비된 사실을 알았다. 자신이 시멘트 속에 들어가 굳어있는 듯했다고 회상했다.

"긴 병에 버틸 재간이 있나요…. 10년을 굳건하게 옆을 지키던 남편에게 그만 놔달라고 애원했지요. 이혼을 했고 저는 휠체어에서 남은 생을 살게 됐습니다."

김 씨의 바깥출입은 참담했다. 전동휠체어만으로는 갈 엄두가 나지 않는 먼 길에는 이삿짐센터에 전화를 했다. 쌀 2가마를 옮겨줄 수 있느냐고 전화하면 1t 트럭이 와 자신과 휠체어를 2만 원, 3만 원을 받고 태워줬다고 했다. 몇 달 전, 반지하방에 누워 있을 때에는 개미가 발가락을 물어도 물끄러미 보고만 있었다고 했다. 아픔도, 통증도 없는 내 다리가 개미들의 양식이라도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는 것이다.

"말이 자식이지…이런 지경에 부모가 자식에게 짐까지 돼서는 안 되지요. 그게 현실이지요. 남편 얘기, 자식 얘기는 그저 덮고 싶습니다. 삶이 그렇지요."

하루 중 누워있는 시간이 8할을 넘다 보니 김 씨의 몸에는 자연스레 욕창이 찾아왔다. 엉덩이에 생긴 작은 상처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 속은 다 썩어들어가고 있었고 엉덩이뼈까지 전이됐다. 통증이 없어 몰랐고 아무렇지 않았지만 그게 너무 속상했단다. 차라리 아픔이라도 느끼고 싶다며.

"장애인이 살아가려면 그 뒤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지요. 제가 기쁘면 그 뒤에는 누군가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어떤 도움도 원하지 않게 된답니다. 아니 이 정도면 감사해야지요. 목이 부러졌으면 어땠을까, 이 두 팔로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지난해 장애연금을 신청하고 차상위계층에 등록했다고 한다. 귀를 막고 눈을 가리며 삶을 견디느라 정부에서 어떤 혜택을 주는지도 몰랐다는 것이다. 수백만 원씩 든 병원비는 카드로 결제한 후 주위에서 건네준 한 푼 두 푼을 모아 갚아왔다고 했다. 대구 북구 강북보건지소의 한 직원은 꾸준히 밥값을 지원해줬다고 전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떠났고 아프고, 굶고, 마음은 온통 상처뿐이지요. 하지만 전 잘 살아갈겁니다. 세상에 절망은 없어요…."

14일 대구의 영남대병원 입원실에서 만난 그녀는 기저귀를 찬 채 엎드려 있었다. 새어나오는 변은 관장을 해야만 뽑아낼 수 있었고 소변은 역류하는 상황이었다. 스스로를 위로하는 그녀의 명랑한 목소리가 너무나 슬프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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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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