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는다)진정한 내 얼굴이란?

입력 2007-08-11 07:19:58

얼굴의 역사/니콜 아브릴/작가정신

파리 태생의 폴란드 화가 로만 오팔카는 1965년부터 지금까지 매일 자신의 얼굴을 사진으로 찍고 있다. 약간 편집증적인 인상의 사진 속 그는 40여 년을 한결같이 똑같은 빛, 똑같은 배경 앞에서 흰 셔츠를 입은 채 똑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짙은 머리칼이 백발이 되어가고 물러지는 살과 처지는 눈꺼풀이 마치 플립아트를 보는 듯 묘하다.

태어나서 처음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비춰 본 순간 우리는 우주, 즉 전혀 다른 물질세계를 대면하게 된다. 얼굴은 우리가 최초로 만나는 계면(界面)이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우리는 자신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 어느 쌍둥이도 완벽하게 닮아있지는 않다. 얼굴은 모든 인간의 최대 관심사이며, 어느 시대에서나 예술세계의 최대 주제였다.

프랑스의 소설가 니콜 아브릴이 바로 이 얼굴을 주제로 역사와 신화, 종교와 철학 그리고 예술의 세계로 오래 나를 잡아끌었는데 즐거웠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마치 주문처럼 들리기도 하는 이 유명한 구절은 한때 '거울공주'라는 별명을 가진 적이 있는 내가 단언컨대 많은 여성들의 내면 깊숙이, 아니 무의식에 각인되어 유전되어지는 무정형 형질의 일종일 터.

그 전형적인 여성의 시선으로 아브릴은 파이움의 거대한 공동묘지에서 발견된 베네치아 여인의 초상과 아케나톤의 왕비 네페르티티의 흉상 조각을 두고 상상한다. 그리고 한 편의 아름다운 서사시를 쓰듯 역사와 신화를 이야기한다. 십자군 전쟁에서 종교가 금지시킨 화장과 염색의 부활을 이야기하며 치아를 검게 물들인 오하구로의 일본을 상기시킨다.

플랑드르화가들의 초상화를 끌어와 시체를 해부한 다 빈치와 자존심 강한 뒤러를, 사진의 발명과 보들레르의 대응을 이야기하며 성형수술이 얼굴의 진보인지 저주인지에 대한 견해를 피력한다. 그리고 20세기의 참혹한 전쟁을 이야기하며 으깨진 얼굴을 그린 인상파 화가들을 옹호한다.

인류 역사에서 사람 형상을 한 최초의 얼굴은 4천500년 전 고대 이집트의 '앉아있는 서기상'이라는 사실(파라오가 아닌 글 쓰는 사람이다!)과 아름다운 아랍미술의 기하학적 문양은 얼굴 형상의 재현을 절대 금기시한 이슬람 교리가 빚은 예술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이 책! 장 콕도를 인용한 '글의 얼굴이 내 진정한 얼굴'이란 서문만큼 깊은 인상을 내게 남긴 책이다.

박미영 시인, 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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