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뒷산에 소풍가고 싶어요"
형제는 울지 않았다. 두 손을 꼭 부여잡고는 손바닥으로 서로를 위로하는 모습을 보였다. 돈이 없어 중학교를 그만둬야 했던 아픔과 6년째 온갖 아르바이트로 엄마의 병원비를 대야 하는 사정을 얘기하고, 자신들을 버린 아버지를 기억 속에서 들춰내면서도 형제는 끝내 울지 않았다. 강하지 않더라도 강한 척이라도 해야 험한 삶을 이겨낼 수 있다며….
김진수(가명·20), 진호(가명·18) 형제. 여느 청소년들과 다름없는 옷차림과 헤어 스타일이었지만 그들은 삶에 잔뜩 지쳐 있었다. 급성 호흡기능 상실과 간경화로 대구의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어머니(44)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형제는 PC방에서 교대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했다.
중학교 3학년과 1학년일 때 형제는 같은 날 같은 학교에 자퇴서를 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헤어지면서 우리를 떠났고, 아버지마저 연락을 끊고 잠적해버린 1년 뒤의 일이었다. 대구 북구의 한 영세민아파트에서 밥을 굶고, 우유 한 통으로 하루를 버텨내던 때였다. 야속하게도 학교에서는 준비물을 챙기지 못하고 공과금을 내지 못할 형편이면 자퇴하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고 권했다고 했다.
"학교를 그만둔 지 1년쯤 지난 후 아는 사람으로부터 엄마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알게 됐어요. 아버지 없이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했는데 우린 너무 어렸어요. 그런데 병으로 말라 비틀어지고 시커먼 얼굴이 된 채 단칸방에 잠들어 있던 엄마를 만났습니다."
형제의 어머니는 간경화에 걸려 있었다. 오른쪽 다리와 왼쪽 다리가 균형을 이루지 못해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형제는 이때부터 엄마를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 주유소, PC방, 미용실, 편의점, 아이스크림 공장에서 일했고 겨울에는 군밤장수까지 했다. 한 달에 적게는 25만 원, 많게는 70만 원도 벌었지만 약값과 병원을 오가는 교통비를 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왜 학교를 다니고 싶지 않았겠어요? 돈이 드는 준비물은 우리에게 큰 짐일 뿐이었습니다. 월급을 주지 않고 도망친 PC방 주인, 이력서를 보자마자 버린 사장 등 그동안 말 못할 많은 일들을 당했습니다.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우리들을 쳐다보는 어른들의 야릇한 시선과 편견은 정말 참기에 힘이 들었습니다."
형제는 지금 8시간씩 교대로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남는 시간은 엄마 곁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기초생활수급권자 신청을 해 50만 원을 받았지만 의료보호 1종을 신청하면서 20만 원으로 줄어들었고, 12만 원짜리 월세방에는 씻을 데가 없어 싱크대에서 머리를 감는다고도 했다.
"엄마가 하루는 TV에서 나오는 보험 광고를 보다가 그러대요. '내가 저런 거라도 들어놔서 너희들에게 줘야하는데. 엄마가, 참 미안하다'구요."
형제는 지난달 엄마가 응급실로 실려와 입원하면서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모두 써버렸다. 돈이 하나도 없으니까 병원에서 퇴원하라고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산소호흡기를 떼면 엄마는 숨도 쉴 수 없는데, 의식도 들었다 놨다 하는 엄마에게 숨쉬는 연습이라도 시켜야 되는데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동생 진호)"약해보이기 싫고, 무시당하는 건 더 싫고, 얕잡아 보이는 건 참을 수 없고. 우리는 그렇게 살았어요.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구요."
(형 진수)"어릴 때 조야동에서 살았어요. 제가 일곱 살 때 엄마, 아빠, 진호와 함께 동네 뒷산에 가서 김밥을 먹었는데 그때 기억이 참 생생하거든요. 엄마는 다리가 불편하니까 다 낫게 되면 업어서라도 다시 그 곳에 가서 김밥을 먹고 싶어요. 공기 좋은 곳에서 마음껏 숨을 들이쉴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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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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