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기·흥미 기르기 중점…지도자들 무보수 자원봉사
10여 년간 사귀어 온 일본 친구가 있다. 이름은 와타나베 준. 현재 일본 후쿠오카현 구루메라는 소도시의 시청 건설과에서 하수도 담당으로 일하고 있는 평범한 공무원이다. 이 친구에겐 정말 소중히 여기는 또 하나의 일이 있다.
바로 동네 유소년 축구클럽의 감독이다. 와타나베는 일주일에 세 번, 퇴근하기가 무섭게 자전거로 집 근처의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달려간다. 거기엔 소도시 특유의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꼬마들이 감독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다.
팀 이름은 아라키 FC. 말이 풋볼클럽이지 유치원생 티를 갓 벗은 1학년 코흘리개부터 제법 의젓한 6학년생까지의 30여 명의 아이들이 멤버다. 와타나베는 십수 년째 이 팀의 감독으로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고 있다.
"일주일에 세 번씩이나 시간을 내기가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엔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내가 하는 이 일이 정말 즐겁고 보람 있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이 J리거가 되고 국가대표로 성장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지만, 축구를 통해 건강한 사회인이 되어 지역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훌륭한 시민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축구클럽의 회비가 얼마인지 궁금했다. 한 달에 천오백 엔. 우리 돈으로 만원 남짓이다. 운동할 때 아이들 물 값, 공 값 그리고 조금씩 모아서 아이들 유니폼 사는 데 사용한다고 한다. 보수가 없는 순수한 자원봉사이며 자기 팀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 있는 15개의 클럽 팀이 다 똑같다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그동안 내가 받은 일본 유소년클럽 축구지도자들의 명함을 보면 참으로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공무원·교사·회사원 등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이웃들이 대부분이다. 축구 이외의 생업이 있기 때문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다는 점, 이것이 이곳 지도자들의 공통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유소년 축구교실이 인기다. 이와 함께 유소년 축구교실을 발전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이 구상되고 일부는 실천되고 있다. 이중 유명 축구선수들이 개설해서 운영하고 있는 유소년 축구교실은 학교의 엘리트 선수 중심의 운동부를 보완할 수 있는 바람직한 유소년 스포츠모델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유소년 축구교실은 학업과 운동을 병행할 수 있고, 시합과 진학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축구의 기본기와 흥미를 기르는 데 중점을 둔다는 데 특징이 있다. 대부분의 지도자가 학창시절 축구선수로 활동한 경력이 있어 기술적인 면에서는 일본의 여느 지도자보다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공을 다루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 이외에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유소년 축구클럽의 참여자는 대부분이 신체·인지·정서·사회적인 측면에서 왕성하게 성장하고 있는 아동들이다. 그 때문에 교육적인 영향력이 매우 클 수밖에 없어 지도자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아이들이 축구클럽에 참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 모두가 장래 직업으로 축구선수를 희망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모든 학부모들이 아이가 훌륭한 축구선수로 성공하기를 원해서 축구클럽에 보내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축구를 통해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해지고, 사회성과 도덕성, 협동심을 길러 올바른 인간으로 성장하길 원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우리 지도자들 중 어엿한 직업을 가지고 봉사하는 지도자가 얼마나 될까. 축구를 가르치는 것을 생업으로 하는 지도자 역시 성적지상주의 엘리트 체육의 피해자가 아닐까. 정상적인 학교 생활과 선수로서의 생활을 병행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축구 이외에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많지 않은 현실이 축구인들의 고민이다.
학생들이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며, 운동이 아닌 직업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도 본인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아이들을 가르치고 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까운 일본에서 배워야 한다. 이제부터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축구를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기성세대가 무엇을 해 주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매년 대회 때마다 운동장에서 만난 와타나베의 팀은 "참가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할 만큼 이기는 데 집착하지 않는다. "감독이 시원찮아 그런 것 아니냐?"고 농담을 건네면 "아이들이 좋아하면 그만"이라고 한다. 지금도 아이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운동장을 뛰고 있을 와타나베의 검게 그을린 얼굴을 떠올리며, 한국 유소년 축구의 현실을 생각해본다.
최태원 대구시생활체육협의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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