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여류비행사 박경원 추락사

입력 2007-08-07 07:31:38

1933년 8월 7일. 한국인 최초의 민간 여류비행사 박경원이 일본을 출발해 여의도비행장에 도착하여 시범비행을 보여주기로 했다. 하지만 그녀는 애기 청연과 함께 일본의 현악산에 추락하여 사망했다. 추락 현장에서 발견된 박경원의 손목시계 바늘은 1933. 8. 7. 오전 11시 25분에서 멈춰 있었다.

박경원은 1897년 대구부 덕산정 63번지에서 태어났다. 현재의 덕산로. 그녀의 부모는 독실한 그리스도 신자인데다가 가정형편도 넉넉했다. 그래서 그녀는 대구의 부잣집 딸들만 다닐 수 있다는 신명여학교 고등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또한 일본에 유학, 요코하마 기예학교에서 외국의 신학문을 배우기도 했고 귀국 후에는 대구 자혜의원 간호과 과정을 마치기도 했다. 당시 그녀의 꿈은 간호사였다.

하지만 박경원은 1922년 12월 10일 용산 연병장에서 펼쳐진 안창남의 시범비행 연습을 구경하고 나서부터 비행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당시 안창남은 한국인 최초의 비행사.

박경원은 결국 파일럿이 되기 위해서 1924년 12월 일본으로 유학, 자동차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비행사가 되려면 먼저 자동차 운전 시험에 합격을 해야됐기 때문. 이후 1927년 3등비행사가 되고 1928년 2등 비행사 자격을 취득했다.

▶ 1953년 북한, 남노당계 박헌영 등 숙청발표 ▶ 1949년 이승만-장개석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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