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논술 이야기] 미신과 금기에 대한 불경한 생각들

입력 2007-08-07 07:52:07

"찝찝해요." 자리에 앉자마자 젊은 김 선생이 내뱉는다. 왜냐고 물었더니 아침에 출근하는 길에 장례차를 만났다는 것이다. "김 선생, 아침에 장례차를 보면 재수가 좋다는 말 몰라?" 하고 물었다. "에이, 그런 미신을 어떻게 믿어요?"

하긴 젊은 사람에게 그런 구닥다리 같은 말이 위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아침에 장례차를 보면 재수가 좋다.'는 말은 왜 생겼을까? 죽은 이가 살아있는 이에게 굳이 복을 줄 리도 없고 아침에 장례차를 만난 이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장례차는 늘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불쑥 나타나 살아 있는 이들에게 문득 바로 옆에 함께 달리는 죽음을 직시하게 만든다. 게다가 아침 아닌가? 생성과 시작의 시간대에 만나는 소멸과 부재는 덜컥 그 민망한 손님이 바로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당혹감과 두려움을 주기 마련이다. 그때 미신은 속삭인다. '그건 오히려 재수가 좋은 거야.'라고. 지독한 자기긍정이요, 타인에 대한 극단적 배려감을 엿보게 하는 이 말 한마디로 산 자와 죽은 자가 서로에게 예의를 표하게 된다.

보통 미신(迷信)이라 통칭되는 말들은 대부분 '~하면 ~한다'는 조건부 서술로, 뒷부분은 은근한 협박이 많다. 믿지 못할 말이라는 미신(未信)이 아니라 믿기도 그렇고 안 믿기도 뭐하니 미신(迷信)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허무맹랑하다고 내치기에는 말 속의 정성과 뜻이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 "남의 집에 초상났을 때 빨래하면 자기 엄마 초상날 비 온다." 왜 그런 협박을 하였을까? 상례(喪禮)는 인간지사 중에 가장 큰 슬픔이요,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일이다. 결혼식처럼 오래 준비하는 의례가 아니라 불시에 그것도 단기간에 모든 절차를 끝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동네 모든 사람들이 상부상조해 주어야만 한다. 개인적인 용무-빨래와 같이 뒤로 미룰 수 있는 일들-때문에 큰 슬픔을 당한 이웃을 나 몰라라 하고 방기하는 이기적인 태도를 경계하는 말이었음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지 않는가?

그렇게 보면 우리가 여태껏 미신이라고 업신여겼던 많은 말들이 존재할 이유가 생긴다. '문지방에 앉지 마라 복 달아난다. 아내가 임신 중에 남의 담을 넘으면 자식이 도둑이 된다. 밤에 쓰레기 버리면 복 나간다. 아침 거미는 재수가 좋으니 죽이면 안 된다.' 등의 말 속에 숨겨진 뜻과 훈계를 여러분도 충분히 찾아낼 것이다. 작은 행동과 습관이 우리의 운세를 만들기 때문에 조상들은 예상되는 재액(災厄)을 막기 위해 미리 경고하고, 경계해도 다가오는 재액에 대해서는 겸허히 수용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복잡하고 힘든 근현대사를 살아온 우리에게는 정치적 금기나 미신도 많았다. 1980년대까지 북한은 절대지존 금기 대상이었기 때문에 미신도 많았다. 당시 북한에서 뿌린 선전문(삐라)이 자주 발견되곤 했는데 학교에서는 그 내용을 눈으로 얼핏 보는 것마저 불온한 행동으로 가르쳤고, '눈으로 한번 보기만 해도 얼굴에 표식이 남는다.'는 말을 아이들은 두려워하며 믿었다. 1990년대 이후 정보통신 기술과 민주주의의 발달로 정보가 공개되고 개성과 실질을 중시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미신은 돌연변이처럼 잘 버티고 있다. '로또 천하 명당'에 전국의 사람들이 몰리고, '수능 대박 상품'이 불티나게 팔리며, '한 달에 30㎏을 빼'는 다이어트 광고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설렌다.

아침에 본 장례 행렬 때문에 하루 종일 재수가 없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의 하루는 보나마나 재수가 없을 것이다. 왜 그러한지를 묻지 않는 미신은 살아 있다. 자신이 만든 편견과 고정 관념의 테두리가 미신을 재생산하고 다시 자신을 완강하게 구속하게 된다. 논술은 '왜'를 묻는 사고과정이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왜'라고 묻고, 모두가 나쁘다고 하는 것을 '왜' 나쁜지 물을 때 우리는 우리의 시야를 덮고 있는 미신의 안개 너머 사물의 실체를 바로 볼 수 있다. 아직까지 찜찜해하는 젊은 김 선생에게 가서 '왜?'라고 물어 보아야지. 아님, 김 선생이 모르는 미신들도 말해서 더 걱정되게 해 볼까 보다. 무척 유쾌한 하루가 될 것 같다.

이금희(대구통합교과논술지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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