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씨의 화법은 매우 직설적이다. '쌀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1990년대, '신화 속에 갇힌 쌀 농사'라며 비판했다가 욕을 많이 먹었다. 병든 부모에게 장기 이식하는 자식을 효자라고 치켜세우는 언론도 맹렬히 비판했다. 엉뚱한 '효자' 만들기로 생명의 흐름에 역행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다. '영어 공용어' 주장을 폈다가(지금도 펴고 있다.) '우리말을 죽이자는 것이냐?' '이완용에 비견될 매국노'라는 비판을 받았다. 근래엔 '성매매 금지법'이 인간본성에 어긋난다며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여성단체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또 북한 핵문제, 햇볕정책,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비판했다. 확신이 강한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복거일씨는 이야기하는 동안 잠시도 손놀림을 멈추지 않았다.
복거일씨의 명함에 적힌 공식직함은 '문화미래포럼' 상임대표이지만, 여러 가지 직함을 갖고 있다. 어떤 사람은 복씨를 사회철학자요 평론가라고 칭하고, 어떤 사람은 소설가 혹은 시인이라고 말한다. 직함이 많은 사람들이 흔히 한가지도 뚜렷하게 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복거일씨는 이 여러 가지를 매우 두드러지게 해낸다. (복거일씨는 자신을 두고 '아무 것도 제대로 못하지'라고 평가했지만….)
복거일씨는 소설을 비롯해 자신의 견해를 담은 사회철학서를 많이 출판했다. 그의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만남이 기대도 됐지만 같은 이유로 부담도 됐다. 사회를 보는 식견이 독특하고 높은 사람, 논리적이고 명쾌한 사람이라는 점은 만나고 싶은 이유이자 부담스러운 이유이기도 했다. 복거일씨는 기자와 20세 이상 나이차이가 났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저는 ∼'이라고 말했다.
복거일씨는 자신이 놀기를 너무 좋아해서 큰 일을 못 이룬다고 했다. 술자리 2차 3차를 주동하는 편이고, 노래방에 가면 밤새 노래 부른다고 했다. 현인의 '전우야 잘 자라', 최갑석의 '38선의 봄', '고향에 찾아와도' 등을 즐겨 부른다고 했다. '전우야 잘 자라'는 특히 자신이 주도해서 만든 우파학회 '하이에크 소사이어티'의 주제가라고 소개했다.
'책벌레'일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그는 운동을 즐긴다고 했다. 길거리 농구와 축구를 즐기는 데, 연구소 근무시절엔 축구를 자주 했다고 했다. 배구 농구 등 공으로 하는 놀이는 모두 좋아한다고 했다. 지칠 줄 모르고 달리며 실력도 수준급이라고 했다. 은행을 그만두고 한국과학연구원 선박연구소에 근무하던 9년 동안 1년 365일 빼놓지 않고 운동장을 뛰었다고 했다. 책을 통해서만 접했던 탓에 복거일씨가 왜소한 사람일 줄 알았는데 양복 입은 복거일씨의 어깨는 넓었다. 구부정할 줄 알았던 등은 곧고 고집스러워 보였다.
◇ 반미'반일은 어리석은 생각
"반미와 반일을 외치는 것은 어리석어요. 미국이나 일본이 우리보다 크기 때문에 잘 보이자는 게 아닙니다. 국가 간의 관계는 이웃 간의 관계와 같아요. 내가 이웃에 적대감을 가지는 데 그 이웃이 내게 호감을 가질리 없잖아요. 상대에게 적대적인 사람은 따돌림당해요. 사람살이는 서로 이해하고, 도와가면서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적대감을 가진 사람이 잘 살기는 어렵지요. 상대를 배려하는 것은 결국 나를 위한 것입니다. 반미나 반일을 외치는 것은 사회가치를 줄이는 행위입니다."
복거일씨는 일본이 우리를 침략했기 때문에 적개심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국민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유로 키워서는 안 된다고 했다. 더불어 일제식민지 시대에 관해 누구도 정확하게 연구하고 말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분명히 존재했던 역사임에도 '그 시대'에 대해 말을 꺼내지 말자고 암묵적으로 결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근대적 정치, 제도 등은 일제시대에 갖춰졌어요. 물론 일본 사람들은 서양을 통해 근대적 제도를 받아들였고요. 그런데 우리 역사에 일제시대는 공백기로 남아 있어요. 역사적 문맹이 심각한 것이지요. 일제시대에 대한 연구와 이해 없이 우리 근대사를 설명하기는 어려워요."
그의 데뷔작이자 히트작 '비명을 찾아서'는 대체 역사소설이다. 말하자면 아직 우리나라가 일제 치하에 있다는 것을 전제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소설에는 일본 상황과 일본 이름, 명칭 등이 자주 나온다. 그래서 복거일씨가 일본어를 무척 잘하는 줄 알았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데 전혀 못해요. 저는 일본사를 영어로 공부했어요. 사실 '비명을 찾아서'는 일본에 관한 글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 대한 내용인데 우리나라 근대사를 공부하다보면 자연히 일본 역사를 공부하게 돼요. 일본 근대사를 알아야 우리 근대사를 알 수 있으니까요."
◇ 매매춘은 선택, 법으로 억압 안 돼
복거일씨는 성매매를 금지하는 특별법에 반대한다. 그 법이 인간본성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해가 없는 법률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성욕은 생명체들의 생식을 돕는 장치죠. 그래서 성욕은 다른 욕구보다 강해요. 그런데 결혼은 자연에서 찾기 힘든 기구입니다. 몇 안 되는 종(種)들만 지녔고, 사람만큼 결혼을 잘 다듬어낸 종은 없어요. 결혼은 (자연에서)그만큼 예외적인 기구이니 위협에 부딪힐 수밖에 없어요. 남성은 여성에 비해 생식에 투자하는 비용이 적어요. 여성의 임신과 수유를 생각하면 쉽죠. 그래서 남성은 가능한 많은 여성을 찾고 여성은 아주 조심스럽게 배우자를 골라요. 그런데 지금 사회가 공인하는 것은 '금욕' 뿐입니다."
그는 성매매 금지는 성병의 창궐과 성범죄를 늘린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막을 수 없는 행위들을 아예 금지해서 문제를 악화시키지 말고 적절히 규제해 부작용을 줄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또한 성매매 종사자들은 사회적 약자이며 몸밖에 팔 것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매춘을 금지해서 피해보는 사람은 대부분 약자들입니다. 매춘 당사자들, 야식 생산하고 배달하는 사람들, 택시기사들…. 그런데 매춘을 금지하자는 사람들은 대부분 유복한 사람들이고요. 그들은 감정의 사치를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성매매는 피해자가 없고 한쪽이나 양쪽이 이익을 봅니다. 법으로 금지할 일이 아니죠."
◇ 주장하고 비판받고…피로하지 않나
복거일씨는 1946년 생이다. 20여년 자유주의자로서 칼날 같은 주장을 펼쳤다. 예순이 넘은 나이인데 끊임없이 날카로운 주장을 펼치고, 끊임없이 욕을 먹는다. 그의 주장에 대해 인터넷에는 많은 꼬리 글이 붙어 있다. 억지주장도 있고 논리를 갖춘 주장들도 있다. 입에 담기 어려운 욕도 많다. 그가 이처럼 무차별적 반격에 지치지 않는 비결은 무엇일까?
"내 손에서 떠난 견해는 스스로 헤쳐나가야 합니다. 내 견해가 옳으면 동조자를 만나 확산될 것이고 틀렸다면 사라질 것입니다. 주장이 새로울수록 비판을 많이 받는 것은 당연해요. 저는 제가 밝힌 견해에 덧붙는 꼬리 글에 반박하지 않아요. 아버지가 자식을 졸졸 따라다니며 지키고 보호하려고 들면 실패하지요. 그럴 수도 없고, 그런 식으로 하면 지칩니다. 논객을 하려면 맷집이 좋아야 합니다. 맷집이 딴 게 아니에요. 반박에 대해 반박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듣지 않겠다, 비방하겠다고 각오한 사람들이 있어요. 이 사람들은 어떻게 말해도 딴소리를 합니다. 그러나 내 견해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생겨납니다. 옳은 견해라면 점점 동조자가 늘어날 것이고 사회적 인식이 바뀌는 것이죠."
예민한 문제에 대해 지식인들은 흔히 애매한 태도를 취한다. 말하자면 하나 마나한 답변으로 예봉을 피해 가는 것이다. 그러나 복거일씨는 성매매 특별법뿐만 아니라 예민한 문제에 대해 날카롭게 평가한다. 그래서 곤욕을 치르는 경우도 많았다. 굳이 그렇게 '예스' '노'라고 말하지 않으면 인생이 편할 텐데….
"제가 가진 게 뭐가 있어요? 돈이 있어요. 권력이 있어요. 지식인이 세상을 살펴보고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은 도리죠. 그리고 재미있잖아요? 할 말을 못하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사람들은 내적 갈등이 많을 겁니다. 사회를 분명하게 보고 알리는 것은 지식인의 도리이고 보람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야 인생이 풍요로워집니다."
복거일씨는 자유주의자다. 자유주의자들은 경쟁적 우위에 상당한 가치를 둔다. 그러나 복거일씨의 작품이나 발언을 살펴보면 약자에 대한 배려가 가득하다. 어찌 보면 앞뒤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도 든다.
"저는 생존력이 강해요. 약자로 살아본 적이 없어요. 어릴 때는 공부를 잘했어요. 어디를 가나 일등을 했고 신동소리를 들었죠. 일등을 하면 급우들도 잘 봐 주고, 선생님들도 귀여워 해주십니다. 그런데 저는 정의감이 매우 강해요. 약자에 대한 배려는 정의감에서 나오는 거죠. 어릴 때부터 구박받고 따돌림 받는 사람들과 친구였어요. 스포츠 경기를 해도 강한 팀에 들어가지 않아요. 정의감은 도덕의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정의감은 타고나는 것 같아요."
◇ 염치없는 사람들 구역질한다.
복거일씨는 1990년대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고 주장했다. 영어 배우는데 너무 많은 돈이 들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은 부자에 비해 기회가 너무 적다고 했다. 그래서 아예 공용어로 정해서 영어공부 비용을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영어를 잘하면 유리한 게 많아요. 선진문물을 빨리 접하고, 외국인과 친구도 될 수 있어요. 외국인과 믿음 우정이 생기면 사업도 잘할 수 있어요. 저는 영어를 잘 해요. 영어를 잘해서 득을 많이 봤어요. 회사에 다니던 시절 해외업무를 잘 처리해서 인정도 받았고요. 스카웃 제의도 많았어요."
그는 '영어는 필요한 사람만 하자.'는 주장은 염치없는 주장이라고 했다. 필요한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고도 했다. 영어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그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영어 공용어화에 반대한다고도 했다.
"영어를 못하면 좋은 직업, 직위를 얻기 힘든 게 현실 아닙니까? '영어는 필요한 사람만 하자'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이에요. 그들은 대체로 영어를 잘합니다. '영어 잘 할 필요 있느냐'면서 자기 자식에게는 해외유학까지 보내며 영어를 시키고 있어요. 위선입니다."
복거일씨는 자신의 '영어 공용어' 주장에 대해, 우리말을 버리자는 것은 아니다, 고 했다. 다만 영어를 배우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드니 공용어화를 통해 비용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만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잉글리쉬 디바이드(English Divide-영어 구사 여부에 따라 삶의 수준이 구분되는 현상)'가 줄어들거나 사라진다고 했다.
"매춘 금지하자는 사람들도 염치없기는 마찬가지예요. 자신은 잘 살면서 못 사는 사람들의 밥줄을 끊어놓으려고 합니다. 그 짓을 하며 그들은 국회의원하고 장관 합니다. 그리고 내다 팔 게 몸뚱이 밖에 없는 사람을 벼랑끝으로 몰아갑니다. 이 사람들, 막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 보면 구역질나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답시고 하는 일이 가난한 사람 힘들게 하거나 부자 골탕먹이는 겁니다. 부자를 골탕 먹이는 게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건가요? 이 사람들, 머릿속에 가난한 사람에 대한 생각이 조금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 "여성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문제 많아"
복거일씨는 연구소 근무시절 도서실장을 겸한 덕분에 책을 많이 읽었는데, 철학과 과학서적을 많이 접했다고 했다. 실제로 논객 복거일씨의 주장과 글은 경제학과 더불어 철학과 과학에 바탕을 둔 글이 많다. 과학과 철학, 과학과 경제학을 따로 떼어내지 않고 유기적으로 묶어 펼치는 그의 견해는 경이롭다. 그는 지금도 최신 과학서적이나 이론이 나오면 꼭 챙겨 본다고 했다. 최신 과학은 금방 '과거'가 되기 때문에 꾸준히 최신 이론을 접해야 한다고 했다.
"저는 남한테 매몰찬 사람, 여자를 부드럽게 대하지 않는 사람을 안 좋아해요. 특히 여성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문제가 많아요. 여자는 중요합니다. 우리는 모두 엄마 배에서 나왔어요. 엄마 몸을 통해 세상에 나온 사람이 여자를 무시한다면 더 볼 필요도 없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났을 때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정장에 서류가방을 들고 우산을 쓴 복거일씨의 뒷모습은 지친 샐러리맨의 퇴근길 같았다. 그가 샐러리맨 생활을 떠난 지 20년이 넘었다. 게다가 그의 견해는 맹렬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사회적 동의를 얻고 있다. 말하자면 복거일씨는 보수논객으로 독보적인 성공을 거뒀다. 그럼에도 정장에 우산을 받쳐든 그의 뒷모습이 고독해 보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뒷모습을 사진에 담을까 생각했지만 담지 않았다. 짧은 순간이었고 설령 사진을 찍는다고 해도 그 사진에 내 느낌까지 담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 복거일은= 1946년 충남 아산 출생.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졸업. 중소기업은행과 한국과학연구원 부설 선박연구소 근무. 87년 가상역사소설 '비명(碑銘)을 찾아서'로 등단했다. 시인'소설가, 사회평론가며 현재 보수적 문화예술인 모임인 '문화미래포럼' 상임 대표를 맡고 있다. 대표작으로 '비명을 찾아서', '높은 땅 낮은 이야기' '역사 속의 나그네' '그라운드 제로' 등의 소설과 '五丈原의 가을' '나이 들어가는 아내를 위한 자장가' 등의 시, '현실과 지향' '쓸모 없는 지식을 찾아서' 등의 사회평론집이 있다. 최근 펴낸 사회평론집 '벗어남으로서의 과학'은 성매매 특별법을 비판한다는 이유로 여성단체의 강한 비판을 받고 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