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정권 잡긴 또 틀렸다

입력 2007-08-02 11:27:05

이번 17대 대선에서 적어도 이 지역 사람 열에 여덟은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것 같다.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에 몰리는 인기가 곧 그 표현이다. 여론조사 때마다 두 사람의 지지율을 합치면 늘 상 80%에 육박한다. 전국적으로는 70%대까지 솟았던 지지율 합산이 요즘 와서 60%대 초반으로 가라앉은 것과 사뭇 대조적이다. 그 만큼 이 곳은 두 사람 중 누구를 통해서건 정권을 바꿔보자는 여망이 다른 지역보다 크다는 뜻이다. 우선 '김대중.노무현 얼치기 좌파 10년'에 대한 보수적 반감에서라고 할 수 있다. 어디서나 읽힐 수 있는 현상이다. 대구.경북 나름의 또 다른 분위기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 30년 권력의 향수'이다. 오랜만에 이 지역 출신이 둘이나 강력하게 출현하자 '권력의 허기'를 채울 호기로 보고 집권 기대감이 각별해진 것이다.

거기에다 대선 구도가 한나라당 영남 표를 갈라놓을 상대가 나올 것 같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회창 때와는 다른 유리한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15대 당시 신한국당을 탈당해 독자 출마한 이인제는 4백92만 표를 땄다. 이 중 3분의 1을 영남에서 가져갔고 대구.경북에서만 50만 표가 넘었다. 김대중에게 불과 39만 표로 진 이회창으로서는 결정타였다. 16대에도 노무현이 대구.경북에서 55만 표를 얻었고, 부산.경남에서는 이회창에게 43%(1백2만 표)까지 따라 잡았다. 이회창은 다른 지역에서 죽으라고 벌었지만 영남에서 선전한 노무현에게 결국 57만 표로 졌다. 따라서 이번에는 이인제 같은 인물도 없을 것이고 또 여권에서 영남 출신 후보가 나올 공산도 희박한 게 객관적 상황이다.

그러한 시중에서 요즘 들어 "또 틀렸다"는 불안감이 생겨나고 있다. 두 사람의 갈 데까지 간 육박전 때문이다. 서로 입은 "경선 뒤 협력할 것"이라 하지만 싸우는 꼴을 보면 정권교체는 날 샜다는 얘기들이다. 아닌 게 아니라 양측은 후보 경선이 다가오면서 이성을 잃어도 보통 잃은 게 아니다. 한 쪽이 '투기꾼 대통령'이라는 말을 만들어 독을 뿜으면 다른 쪽은 '최태민 유훈정치'라는 극언을 퍼붓는 식이다. 상호 비방도 이쯤이면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넌 거나 마찬가지다. 이 전 서울시장은 친인척과의 부동산 연루 의혹이, 박 전 대표는 고 최태민 목사와 친분관계가 어떤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다. 어느 쪽도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들이댄 게 없다. 그런 단계에서 서로 치명적인 낙인부터 내리찍고 있다. 본선 상대라도 그렇게 함부로 단정짓지 못할 것이다.

이.박의 '더러운 싸움'에는 한나라당 전체가 휩쓸렸다. 국회의원부터 시작해 시골의 기초의원, 평당원까지 패가 갈려 서로에게 침을 뱉고 있다. 대구 국회의원은 4대5로, 경북은 7대6으로 찢어져 이 쪽 아니면 박 쪽을 쑤셔 박지 못해 안달이다. 중립이라야 1~2명이다. 두 사람 곁에서 술책을 내는 핵심 브레인도 모두 이곳 의원들이다. 좁혀 보면 대구 경북이 쫙 찢어져 싸움판을 주도하고 있다. 그 후유증이 만만찮을 것이다. 이미 선거 뒤 손볼 살생부 얘기가 양측 모두에서 돌았다. 겉으로 모두 부인하고 있지만 승리한 쪽에서 가만있을 것 같지 도 않다.

그러기 때문에 '너 죽고 나 죽자'로 가고 있으며, 차라리 집권을 못하는 게 낫다는 생각들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이다. 야당으로 남아 있으면 어느 쪽으로 붙었든 내년 총선 공천 따기가 더 안전할 것이라는 계산 같은 거다. 본시 개개의 정치인은 정권보다 자신의 정치생명을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도박을 건 후보 쪽이 지면 한나라당을 뛰쳐나가 다른 정파에서 총선 출마를 도모하려는 이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당내 경선을 이판사판의 자해공갈 수준으로 끌고 갈 수 없는 것이다.

대선은 누구도 장담 못한다. 한나라당은 두 번이나 김칫국부터 마신 전력이 있다. 이번에도 예선에 목숨을 걸지만 본선은 늘 1~2% 승부였다. 어리석게도 온갖 추한 의혹을 떡칠만 하는 검증이 본선 맷집을 키우는 거라 믿고 있다. 15.16대 때 혹독하게 당한 네거티브를 이번에는 자청하고 있다. 범 여권은 가만히 앉아서 공격거리를 헌납 받고 있다. 바보가 따로 없다. 여론조사를 보면 이.박 지지층 모두 30% 정도가 범여 단일 후보가 누구냐에 따라 태도를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유권자 중 한나라당 고정 지지 층은 40%가 전부다. 지금은 이.박이 선두 경쟁을 이어가지만 앞으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한나라당의 이번 대선 승패 변수는 외부보다 내부에 있다. 19일 경선 이후를 지켜봐야 하는 이유이다. 김성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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