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농촌체험] ⑫청도 죽촌마을

입력 2007-08-02 07:16:14

아이들이 만든 연꽃차 마시니 속까지 시원

▲ (사진 위)체험참가자들이 연꽃 가득한 유호연지 군자정에서 연꽃차를 음미해보고 있다. (아래)지난달 28, 29일 청도 화양읍 유등리 죽촌마을에서 열린 농촌체험행사에서 참가자들이 쪽으로 물들인 손수건을 햇볕에 말리고 있다.
▲ (사진 위)체험참가자들이 연꽃 가득한 유호연지 군자정에서 연꽃차를 음미해보고 있다. (아래)지난달 28, 29일 청도 화양읍 유등리 죽촌마을에서 열린 농촌체험행사에서 참가자들이 쪽으로 물들인 손수건을 햇볕에 말리고 있다.

'여름의 진리는 그 쏘는 듯한 광휘와 그 찌는 듯한 작열에 있다.'

수필가 김진섭은 여름을 낭만적으로 노래했지만 35℃가 넘는 무더위는 절로 몸서리난다. 숨쉬기도 벅찬 지경에 태양이 너무 가까이 다가온 건 아닐까 하는 어리석은 착각마저 든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성하(盛夏)의 뙤약볕을 1년 만에 찾아온 친구 삼아 보기로 마음먹는다.

복숭아 향기 가득한 과수원길을 해죽해죽 걷다 보니 멀리 초록빛 잔디밭이 보인다. 아니다. 가까이 다가서니 연밭이다. 그것도 수만 평은 됨직해보인다. 물론 연꽃 사이로 만든 인공섬 위에는 어김없이 정자가 자리 잡고 있다. 옛 선조들의 풍류! 군자정이다.

오늘의 첫 체험은 연꽃 차 시음. 금방 따온 연꽃을 수반에 넣고 얼음물을 조금씩 부으니 닫혀있던 꽃봉오리가 하나둘 기지개를 편다. 활짝 핀 연꽃 잎은 차가운 물에 놀란 양 수줍은 처녀의 붉은 뺨처럼 더욱 발개진다. "엄마, 드셔보세요. 제가 만들었어요." , "어디 맛 한번 볼까. 향이 아주 좋구나." 시원한 정자 그늘 아래 차가운 연꽃차 한 잔이 가슴 속까지 시원하게 적셔준다.

갤러리 '청담'을 둘러본 뒤 마을로 되돌아오는 길, 고성 이씨 재실이 발길을 이끈다.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졌다가 수차례 중수를 거듭, 옛 맛은 덜하지만 꽤 큰 규모를 자랑한다. "오늘 밤, 이곳에서 주무실 분 손들어 보세요. 민박이나 펜션은 아무 때나 가실 수 있지만 이런 재실은 오늘 아니면 체험할 기회가 없을 걸요." 달콤한 말로 꾀어보지만 선뜻 나서는 이가 없다. 모두들 무섭다고 싫단다. 하지만 귀신이 제일 싫어한다는 복숭아나무가 지천인데 뭔 걱정이람.

귀여운 새끼제비들이 천장 한구석 보금자리에서 내려다보는 '가시버시 공방' 창고에 식탁이 차려진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온 터라 호박잎과 된장, 갖가지 나물뿐이지만 모두를 식욕을 채우기에 바쁘다. 이 모습이 진짜 참살이 아닐까.

전통 매듭 매어보기는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무딘 손끝만 탓한다.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열심히 설명을 들어도 애당초 모양이 나지 않는다. 꼬마녀석들은 숫제 밖으로 나가 공차기에 열중한다.

모닥불에 잘 구워진 구수한 감자 냄새가 다시 코끝을 간지럽게 한다. 이때쯤 막걸리가 빠질 리 없다. 주고 받는 한잔 술에 처음 만난 쑥스러움은 눈 녹듯 사라지고 코흘리개들은 앞다퉈 노래자랑으로 흥을 돋운다. 시골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농촌의 하루는 도시보다 빨리 시작된다. 새벽 어스름이 물러가자 일찍 일어난 체험객들은 염색재료로 쓰일 쪽잎을 따러 나선다. 리어카 한가득 챙겨온 쪽잎이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이 눈부시다. 정성스레 염색했다 헹구고 몇 번을 반복하자 하얗던 손수건이 기품 있는 쪽빛으로 변신한다. "너무 색깔이 곱네요. 우리 눈에는 역시 우리 색이 좋은가 봅니다."

유호연지는 그 옛날 조선시대 시집간 딸이 친정어머니를 만나던 '반보기' 자리였다고 한다. 친정길을 반만 간다고 해서, 다른 가족들은 볼 수가 없다고 해서, 눈물이 앞을 가려 어머니의 얼굴이 반만 보인다고 해서 반보기란다. 이틀 동안 농촌의 즐거움을 체험한 도시인들은 언제 또 반보기를 하러 올까.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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