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아이 교육문제로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화를 삭이느라 뒤척이는데 집안 뒤치다꺼리를 마친 아내가 옆자리에 누웠습니다. 나는 헛기침을 몇 번 하다가, 옛날에, 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었습니다. 옛날에 말이지, 양치는 사람이 있었대.
그런데 많이 가난했나봐. 어렵사리 목장을 마련한 곳이 낭떠러지가 있는 산비탈이었거든. 양치기는 걱정이 많았어. 혹시 양들이 떨어지면 어쩌나 하고 말이야. 낭떠러지 쪽으로 여러 겹의 말뚝을 박아놓았지만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양치기는 개를 들여왔대. 그리고 양들이 그쪽으로 가지 못하게 훈련시켰지. 덕분에 양들은 별 탈 없이 잘 자랐어.
그런데 언제부턴가 양들은 잘 크지 않고, 새끼도 안 낳고, 양털도 잘 안 자라는 거야. 양치기는 모든 곳을 살펴보았지만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었어. 그런데 어느 날 낭떠러지 가까이서 사납게 달려드는 개에 놀라 도망가는 어린 양을 보다가 문득 깨달았지.
양들이 아픈 건 오히려 자기들을 너무나 잘 지켜주려는 개 때문이었던 거야. 개가 무섭게 짖어대면 낭떠러지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양들까지도 덜컥 겁을 먹고 오금을 절며 불안해한 거지. 으르렁대는 개를 피하려다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진 경우도 있었는지는 몰라.
왜 양을 괴롭혔냐고 양치기는 화를 냈지. 개는 억울하고 분했어. 제대로 먹지도 않고 잠도 안 자가며 열심히 일한 것밖에 없는데 말이지. 그래서 몹쓸 땅에 양을 키우지 않았으면 그런 일 없었을 것 아니냐며 오히려 양들에게 하듯 주인에게 으르렁대었어.
양들도 가만 들어보니 개를 사납게 만든 것은 주인 때문인 거야. 그래서 양들도 양치기에게 뿔을 들이대었대.
양치기는 기가 찼어. 잠자리와 풀밭을 마련하고, 양들이 아픈 것을 누구보다 걱정하며 온갖 정성을 다하는 나에게 너희들이 왜 달려드느냐고 말이지….
그래 여보, 누구 탓일까? 주인이나 개가 양들을 너무 어리석게 생각한 걸까? 아무리 미련하다 해도 낭떠러지가 위험한 것은 알지 않을까? 오히려 더 맛있는 풀이 자라는 거기로 갈 줄 아는 양이라면 더 똑똑하거나 용감한 양일지도 모르잖아.
주인은 그동안 몰랐을까? 개에게 안전을 다 맡겨버린 게 미안해서 짐짓 모르는 척했거나, 양을 맡긴 게 오히려 볼모가 되어버린 자신에게 화난 건 아닐까. 아내의 얼굴에 기댄 내 어깨에 문득 따뜻한 습기가 느껴져 나는 아내의 손을 찾아 꽉 쥐었습니다.
조현열(아동문학가·신경외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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