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교장은 정년 퇴직 후에 아내와 노후를 행복하게 지내다가 갑자기 아내를 돌아오지 못할 먼 나라로 보낸 뒤 혼자 살고 있다. 큰아들은 대학 교수이고 작은아들은 고급 공무원으로 자식 농사를 잘 지어서 아들들이 서울로 와서 같이 살자고 해도 조석을 파출부에게 맡기고 그대로 대구에 머물고 있다.
젊었을 때는 등산을 하는 취미가 있었는데 고희를 넘기고 나서는 명승고적을 찾아다니며 노년의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 젊었을 때 교장은 말을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요즘에는 누구를 만나도 무표정하게 말이 없어졌다.
그러던 그가 딸의 전화를 받고는 어디서 솟아났는지 말소리가 커지고 어깨를 펴고 다닌다. 그의 가까운 친구 한 사람이 넌지시 그 까닭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여태까지 숨겨왔다면서 그간의 사연을 신나게 이야기를 했다.
그가 마흔이 되었을 때, 아침 출근을 하기 위해 대문을 열어보니 누가 버렸는지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있었다. 사방을 살펴봐도 아무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그 아기를 안고 들어가서 아내와 상의를 했다. 처음엔 아내가 완강히 거절하다가 포대기 속의 쪽지를 읽더니 "그냥 두고 출근하라."고 하여 부랴부랴 학교에 갔으나 앞일이 막막했다.
그 쪽지에는 '이 아기를 키우지 못할 형편이어서 두고 가니 키워주면 고맙겠다.'는 사연과 함께 '아기는 이름도 없으니 그렇게 알고 받아주면 평생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글과 아이의 생년월일시가 적혀 있었다. 그 후 부부는 친자식처럼 그 아이를 키워 좋은 신랑을 골라 시집을 보냈다.
그 뒤에도 변함없이 친딸처럼 생각하고 지내 이웃 사람들조차 그 비밀을 모르도록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그 딸이 낳은 아들이 서울대학을 졸업한 뒤 지금 미국 하버드 대학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공부를 얼마나 잘했던지 대학원 학생 중에서 노벨화학상을 받을 만한 실력이 있다고 하며, 담당교수가 특별강의를 한다는 소식이 왔다는 것이다. 딸의 전화를 받고 힘이 난 까닭도 그러했다.
만일 그때 그의 아내가 끝까지 아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 아이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을까? 모르긴 해도 고아원이나 전전하며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을 것이고, 설령 누가 키웠다 해도 오늘의 남편을 만나지는 못했을 것이니, 참으로 운명이라는 것이 불가사의한 것같이 생각된다.
그들 부부의 착한 마음씨가 밑거름이 되어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를 탄생시키게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옛말에 '착한 일을 많이 한 집의 자손은 뒤에 경사로운 일이 생기고, 나쁜 짓을 많이 한 집의 자손은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했는데 참으로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가 교육계에 헌신해 많은 공적을 남긴 것이나 그 자녀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이 겉으로 보면 우연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모든 것이 이웃을 사랑하고 사회를 위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지금 그는 팔순이 가까운 고령에도 건강하게 살고 있으니 그것 하나만 해도 복을 받은 사람이다. '업둥이'라는 말은 업처럼 생각하고 조심해서 키워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는 말이다. 키울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이 남의 집 앞이나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 버리는 아이를 잘 기르면 언젠가는 그 보답을 받을 것이라는 뜻이 담긴 말이다.
지금은 조금 줄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가 고아 수출국이라는 외국 언론의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형편이 허락하면 업둥이를 하나쯤 길러보는 것도 뜻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딸이 넷이나 되어서 그러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실천을 하지 못하고 말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후회가 된다. 미국의 어떤 교수는 친자식이 있는데도 세계 각국의 아이들을 입양해 기르는 모습을 TV에서 보았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정재호(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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