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모든 소리에서 발견한 삶의 '정겨움'

입력 2007-07-27 07:21:37

빗소리, 컴퓨터 소리, 물 소리, 목소리…

여름철, 극장에 단골메뉴로 오르는 것이 공포영화이다. 공포물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탓에 어쩌다 친구들과 어울려 함께 관람이라도 하게 되면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언제나 무서운 장면이 나오면 꼭 귀를 막곤 하는데, 예민한 청각 탓이라고만 하기에는 요즘 공포영화들의 '소리 공포'는 그 수위가 대단히 높다.

어떤 공포영화들은 도를 넘는 과다한 음향 때문에 완성도에 있어서 종종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관념으로는 받아들일 수 있는 '소리'라 해도 감성이 거부를 하게 된다면 공포영화를 즐길 수 없지 않겠는가.

소양부족 탓인지는 모르지만 고음의 성악곡이 많이 나오는 오페라에 대한 매력을 못 느낄 뿐만 아니라 악기 또한 첼로나 콘트라베이스와 같이 저음을 내는 소리에 더 매료된다. 톤이 높은 소리나 큰 소리들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생래적인 것이어서 어쩔 수가 없는 것인가 보다.

심지어 초등학교 운동회 때는 달리기 출발을 알리는 신호음인 총소리가 무서워서 귀를 막고 바라보다가 친구들이 모두 출발선을 떠난 후에 뒤늦게 달리는 바람에 꼴찌를 한 적도 있다. 물론 정상출발을 했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썩 훌륭하지 못했겠지만, 그 에피소드는 어린 시절 오랫동안 주변의 놀림감이 되었다.

특별함이랄지 괴벽이랄지, 아무튼 소리에 대한 민감함이 이쪽 분야의 일을 하는 데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 멀리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우산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 컴퓨터의 드라이브 소리, 아이를 부르는 엄마들의 소리, 비둘기 소리, 수돗물 흐르는 소리 등등 일상을 파고드는 온갖 소리들에 관심을 갖다 보면 영화작업에서 디테일을 찾는 데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사물이 만들어내는 모든 소리에는 멜로디의 유무에 관계없이 음악성이 깃들어 있다. 소음을 음악의 범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은 19세기 말 클래식 음악가들에서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생활'에서 만들어지는 소리를 그저 '소음(騷音)'으로 취급하지 않고 예술의 차원으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노력은 계속 이어져 요즘의 현대음악에서도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로 파급되고 있다.

소음이 지나쳐 신경을 자극하는 종류의 소리가 아니라면, 무심한 가운데 들리는 일상의 소리에서 사람 사는 실상이야 어떻든 '정겨움' 같은 것으로 세상을 낙관할 때가 있어 참 좋다.

전소연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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