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새만금과 신석정 공원-신석정②

입력 2007-07-24 07:2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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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혼란했던 역사의 격류를 겪으면서도 끝내 신석정은 고향을 버리지 않았다. 오직 향토에 머물러 향토에 이바지하고 향토에 묻힐 것을 다짐하곤 하였다. 한때는 편집 고문으로 지방 신문사의 일을 보기도 하였으나 여기서 물러나서 주로 중·고등학교에서 국어교육에 이바지하였다. 시인의 생활은 참담한 가난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시와 더불어 살려는 그의 의지에 변함이 없었고 오히려 날로 불붙는 열정을 시에 쏟았다. 제 4시집 '산의 서곡'의 발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시와 더불어 이순이 넘었다. 그동안 역사의 흙탕물 줄기가 무참하게도 내 정신세계를 여러 번 짓밟고 달아났다 그러나 아직까지 허튼 속정에 국척하거나 한눈 팔기에 나를 크게 소모한 적이 없음을 자위한다. 시가 잘 되고 못 됨은 공정에 앞서 오로지 선천적 천분에 맡길 일이요, 나대로 저 큰 산의 의연한 모습으로 시에 임하는 자세는 예나 다름없다."

다시 찾으리란 약속과 함께 생가를 뒤로하고 신석정 공원으로 향했다. 동진면사무소, 계화면사무소를 거쳐 계화리 봉수대가 보이면서 바다가 보였다. 왼편에는 내변산 산자락이 나타났다. 아마 신석정은 저 산자락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걸 좋아했으리라.

란이와 나는 / 산에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 밤나무 / 소나무 / 참나무 / 느티나무 / 다문다문 선 사이사이로 바다는 하늘보다 푸르렀다 // 란이와 나는 / 작은 짐승처럼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 짐승같이 말없이 앉아서 / 바다같이 말없이 앉아서 /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 란이와 내가 / 푸른 바다를 향하고 구름이 자꾸만 놓아가는 / 붉은 산호와 흰 대리석 층층계를 거닐며 / 물오리처럼 떠다니는 청자기빛 섬을 어루만질 때 / 떨리는 심장같이 자즈러지게 흩날리는 느티나무 잎새가 / 란이의 머리칼에 매달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 란이와 나는 / 역시 느티나무 아래에 말없이 앉아서 / 바다를 바라다보는 순하디순한 작은 짐승이었다 (신석정의 전문)

란이가 혹시 어린 시절 신석정의 소꿉친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 시를 읽었다. 최근에 안 바로는 신석정의 둘째딸 이름이란다. 신석정은 바다에 살면서도 산을 진정 좋아했던 시인이다. 바다를 아주 가까이에 두고도 밤나무,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보는 걸 즐겼다. '푸른 바다를 향하고…나는 보았다' 부분은 얼마나 감각적인 표현인가. 바닷바람이, 느티나무 잎새가 가슴 속에서 바르르 떠는 그런 환상에 사로잡혔다. 바다를 오른쪽에 두고 얼마를 달렸을까. 해창쉼터를 지나 신석정 공원이 나타났다. 작은 언덕배기 위에 자리 잡은 작은 공원이었다. 눈 앞에는 새만금 방조재가 끝이 보이지 않게 뻗어있었다. 이슬비에 바람이 심했다. 공원 안 신석정 시비에는 가 새겨져 있었다. 아주 작은 공원이었다.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곧게 뻗은 해안도로, 거기에 비해 공원의 규모는 조그만 바람에도 바다를 향해 무너질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대단한 것 아닌가. 그 지방 시인의 이름으로 공원을 만들었다는 것. 이름도 모를 수많은 들꽃들로 장식된 공원의 작은 뜰, 파도 소리가 유난히도 강하게 가슴으로 다가왔다. 비가 내린다. 시인의 시비는 외롭게 바닷바람을 맞으며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신석정 공원 앞에는 군산까지의 33㎞의 새만금 간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대쪽같이 곧은 시인께서 살아계셨다면 과연 어떤 독설을 내뱉으셨을까?

한준희(경명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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