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천희 엮음/삶이 보이는 창 펴냄
"1970년 서울에서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스무살 이었습니다. 그해 7월 9일 세종로 대성학원에서 미아리까지 따라온 당신이 내 등을 툭 친 그날부터 저는 마음에 일체의 의심없이 오직 당신을 사랑하는 식지 않는 열정으로 살게 되었습니다."(노천희)
"2월 24일부터 처음 일기가 시작되었다. 나의 시작되는 고난과 노야와 헤어져 있는 시간을 노야에게 그대로 전하리란 생각에서 쓰기 시작했다. 한날 한시도 노야를 잊은 적이 없다."(현승효)
이 책은 1977년 군에서 의문사 한 현승효 씨의 일기와 그가 뜨겁게 사랑했던 노천희 씨와 주고 받았던 편지를 모아 엮은 것이다. 1970년대 암울한 시대의 격랑을 헤쳐가다 어이없이 숨져간 한 젊은이의 삶과 사상, 청춘 남녀의 절절한 사랑이 담겨 있다. 현재 뉴욕 공립도서관에서 사무원으로 일하는 노천희 씨는 작은 수첩에 깨알 같이 적인 현승효 씨의 일기와 수많은 편지를 30년 넘게 간직해 오다 책을 펴내기 위해 직접 타이핑하고 정리했다.
1950년 대구에서 태어난 현승효 씨는 경북대 의대 재학 당시 유신독재 철폐운동을 주도하고 장애인 학생 입학을 불허하는 학교의 처사를 비난하다 제명됐다. 1975년 2월 22일 강제 징집을 당해 양평 부근 5사단 27연대 의무중대에서 위생병으로 근무하다 제대를 4개월 앞두고 박격포 부대로 전출된 뒤 1977년 6월 29일 완전군장으로 구보를 하다 골인점에 들어와 쓰러져 숨졌다. 그의 나이 27세였다. 열경련으로 사망했다고 하는데 전신을 감은 붕대를 푸니 온 몸이 청동녹색이었다고 한다. 올해는 그가 죽은 지 30년이 되는 해다. 현승효 씨의 죽음은 현재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회부돼 있다.
현승효 씨는 군에서 노천희를 그리며 200자 원고지 2천장 가까운 분량의 기록을 남겼다. 그것은 그의 연인 노천희 씨와 함께 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현승효 씨의 일기는 노천희를 향한 끊임없는 대화이며 이들이 주고 받은 편지는 폭력과 억압의 시대와 군대라는 강압적 공간 너머에 존재하는 하나의 이상이었다.
현승일 전 국민대 총장은 "동갑내기인 노야와 승효는 1970년 재수시절 처음 사귀었는데 이때부터 그들의 운명이 시작되었다. 승효의 일기는 입대 후부터 세상을 떠나기 이틀전까지의 기록이다. 노야는 승효의 생명이었다."고 막내 동생을 회고했다.
현승효 씨가 군 복무기간 쓴 일기에는 노천희 씨에 대한 극진한 사랑 외에 그의 철학적 사상도 깃들여 있다. 그는 기독교, 불교, 칸트와 헤겔, 맑스와 니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철학적 사유를 넘나들었다. 현승효 씨는 군에서 200자 원고지 5천매 분량의 철학 서적 초고도 완성했다. 488쪽, 2만 원.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