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세이] 꿈 꾸듯 다시 그리운 금강산

입력 2007-07-21 09:3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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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의 휴대를 허용하지 않은 것은 보안상의 이유라기보다 차라리 금강산과의 온전한 소통을 위한 배려인 듯싶었다. 그렇다면 북측 검색대를 통과할 때 슬쩍 째려보는 담당자의 눈빛 또한 초야를 앞둔 신부의 긴장을 한껏 고조시키는 신랑의 야릇한 미소쯤이라 여겨도 무방하리라.

지난 15일 2박3일 일정으로 떠난 대구문인협회의 '시민과 함께하는 금강산 문학기행'은 그런 호의(?)에 힘입은 탈속과 설렘으로 시작되었다. 일행 131명의 첫 일정은 금강산 교예단의 묘기 관람이었다. 나는 신기에 가까운 수련을 쌓는데 얼마나 피땀을 흘렸겠냐는 안쓰러움에서 비롯한 눈물겨움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내내 간이 녹았다 굳었다 하는 동안 이방인의 공연이 아니라 내 민족 같은 동포의 재주라는 걸 깨달으면서 눈물샘이 찰랑거렸다.

이튿날 구룡연 가는 길엔 비가 끊임없이 추적거렸지만 우의도 우산도 모두 접었다. 길고 긴 날을 갈무리해둔 그대 향한 그리움 앞에 시방 딱 섰는데 몸이 좀 젖은들 대수랴. 가다 삼록수 한 모금으로 원기충전하고 금강문 지나 옥류동, 연주담에 이르니 이미 선계에 깊숙이 들어섰음을 실감했다. 계곡을 흐르는 물의 투명함과 에메랄드빛 때깔, 물이끼조차 형성되지 않아 물고기마저 범접을 허용하지 않는 청정, 그래서 금강산 앞에서는 다만 바라보고 감탄할지언정 시인이고 화가 묵객도 요령을 흔들지 말라고 했구나. 비봉폭포에 당도해서는 더욱 그랬다. 비봉의 물줄기는 하늘 저 오름 높은 곳에서 비롯되어 세상을 가르는 듯 완벽한 선경이고 성수였다.

봉우리 하나 오를 뿐인데 스웨덴 구스타브 국왕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여섯 날 중 마지막 하루는 오로지 금강산만을 만드는데 보내셨을 것이다.' 라고 한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란 걸 느낄 수 있었다. 관폭정에서 바라본 구룡폭포도 그러하였지만 사진과 실경의 편차가 금강산의 폭포만큼 큰 곳이 있겠는가 싶었다. 물론 평면적 풍경과 역동적인 물줄기와는 다르겠으나 금강의 그것은 다른 장엄한 폭포와 비교해도 한참 다르다는 것을 가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으리라.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서린 상팔담은 나중을 기약하며 타박타박 산을 내려왔다. 출발지점인 목란관에서 점심으로 먹은 냉면은 조미료의 입맛에 길들여진 우리로서는 결코 탁월한 맛이라고 할 수 없었다. 대신 식후 북측 남녀 안내원들과 우리 일행 몇이서 어울려 마신 찹쌀막걸리는 '선생님! 맛 어떻음네까?' 라는 물음에 '귀똥찹니다, 아주 진땡이네요.'라고 말하려다가 품격 낮은 어투로 오해받을까 싶어 '기가 막힙니다. 정말 맛이 진하고 구수하군요.' 라고 답해줄 정도로 괜찮았다. 그들은 막걸리 대신 탄산단물로 대신했지만 남북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가벼운 가족관계에서부터 정치 경제까지 관심의 범위를 넓혔다. 남성 안내원은 자기들도 좋은 물건 만들어 다른 나라에 팔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고 다른 나라의 좋은 물건도 인민들이 자유롭게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은근히 자유무역과 개혁개방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남측의 정치 현실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금강산 관광사업도 위축되는 게 아니냐는 여성 안내원의 우려에 절대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거라며 안심(?)을 시키기도 하였다. 수줍음 많은 여성 안내원으로부터 '심장에 남은 사람'과 '다시 만납시다.'를 한 소절씩 듣고 아쉽게 발걸음을 돌린 일행은 그날 밤 현지 행사인 '예술속의 금강산'이란 주제의 세미나를 해금강호텔에서 가진 뒤 못내 아쉬운 금강산에서의 마지막 밤을 북측에서 운영하는 실내포장마차에서 달랬다.

화엄경에서 따왔다는 금강은 '지혜가 금강석처럼 견고하고 깨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잠시 견고한 지혜는 숨겨둔 채 금강산 밤하늘 아래서 마음껏 감성을 풀어헤쳤다. 그러나 돌려 노래를 하면서도 분위기를 고려했고 통일의 염원을 담은 눈동자도 교환하였다. 파장 무렵 어여쁜 봉사원 아가씨들로부터 중창으로 '반갑습니다.' 와 '언제 만나랴'를 청해듣고 마지막엔 일행 모두와 손에 손을 잡고 다함께 민족의 노래 '아리랑'을 북한 버전으로 부르는 것을 마지막으로 방점을 찍었다. 이튿날 해금강 삼일포와 만물상 코스로 나뉘어 금강산 기행을 마친 일행의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내내 천하제일 명산 이야기로 가득했다. 나뭇잎 하나로 우주를 이야기하듯 빼어난 봉우리와 물줄기 하나로도 가슴이 설레듯 분명 금강산은 우리에게 한 점 단단한 결석으로 가슴에 남아 다시 또 그립고 그리워지리라.

권순진(대구문인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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