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영화세상] 달콤한 인생

입력 2007-07-19 16:00:58

김지운 감독, 이병헌 주연 '달콤한 인생'은 바람에 흔들리는 수양버들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바람과 함께 화면은 점점 밝아진다. 그 때 한 남자의 목소리가 다가온다. "어떤 제자가 있었습니다. 제자는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흔들리는 것은 바람입니까, 나무입니까? 스승이 말하길, 지금 흔들리는 것은 바로 네 마음이니라."

'달콤한 인생'은 남자의 흔들림에 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태어나 뜻을 세우고 이름을 알리고 가정을 만들고 삶을 경제하는 남자의 삶. 그 중 가장 절정의 나이라고 할 수 있을 40은 불혹(不惑)의 나이라고 불린다. 불혹은 무엇인가? 미혹(迷惑)되지 말 것, 그러니까 흔들리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40이 불혹인 까닭은 흔들릴 이유가 없어 흔들림에 가장 약한 나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직장도, 가정도, 재정도 모두 안정적일 때 흔들림은 유혹으로 다가온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 흔들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던 나무의 대답이었듯이 흔들릴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에게 바람은 바람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이 남자, 아직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조직의 2인자이자 가꾸고 견디어야 할 것이 즐길 것 보다 더 많은 남자, 삼십 대의 선우는 유혹에 눈을 감아야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흔들려서는 안 될 가장 위험한 순간 바람과 마주하게 된다. 그의 보스이자 1인자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린 것이다.

선우가 여자에게 흔들리게 된 순간은 '바람'에 의해 뿌리가 뽑혀 버린 나무를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여자가 자신의 소리에 귀 기울인 채 첼로를 연주하고 있다. 막연히 그녀를 바라보던 선우는 어느 순간 갑자기 그녀에게 사로잡혀 버린다. 이유는 없다. 평소에 자신이 좋아하던 스타일도 아닐뿐더러 철없고 제 마음대로인 그녀는 골치 덩어리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데 그녀의 그 철없음이 순간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달콤한 인생'의 가장 큰 미스테리 중 하나는 다만 선우가 그녀에게 마음을 품었다는 이유로 목숨의 위협을 받는다는 점이다. 보스는 그의 잘못된 행실이 아니라 그릇된 선택, 흔들림 자체를 추궁하고 단죄하고자 한다. 보스는 그를 땅에 파묻고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흔들림' 자체라는 듯 혹독한 형벌을 준다.

말쑥하게 차려입고 거울을 보며 하루를 정돈하는 남자의 삶, 그 차갑고 단정한 삶에 끼어든 여자로 인해 선우의 삶은 엉망진창이 된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본 적도 그렇다고 가까이서 그녀의 체취를 맡아 본 일도 없다. 하지만 그는 그녀로 인해 기꺼이 삶의 방향을 전환한다. 그렇지 않을까? 수로부인에게 꽃을 꺽어 바친 노인의 사랑은 무엇일까? 다만 그녀로 인해 삶의 진로가 잠시 달라진 것이 아닐까? 흔들림이 없다면 삶은 얼마나 지리멸렬할까? 영화의 에필로그는, 그런 점에서, 한 편의 시임에 분명하다.

"제자는 깊은 잠을 자며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고통스러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럼, 왜 울었느냐? 그 꿈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루어지지 않은 소망, 가지 않은 길 때문에 인생은 달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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